월급 200만원 주면 누가 조선소에 오겠습니까?

천현우의 요즘 조선소 _10

일러스트레이션 김재영

‘탑재 노동’이 가장 보람찬 순간은 언제일까? 선배들은 모두 배를 진수할 때라고 대답했다. 탑재는 조각조각인 선박 블록을 모두 이어 붙여 겉모양을 완성하는 작업이다. 한국 조선소는 이 작업 속도가 경이적으로 빠르다. 하룻밤 자고 오면 배가 아파트 두채 크기씩 불어난다. 직접 경험해보면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 지경이다. 진수는 그 배를 처음으로 물에 띄우는 과정이다. 진수가 곧 배 완성을 뜻하진 않지만, 만든 배가 움직이는 최초의 순간이다. 옆으로 수백미터, 위로 수십미터짜리 쇳덩어리가 움직이는 웅장한 순간의 최초 목격자가 바로 탑재 노동자다.

3월 초, 입사하고 맡은 첫 배의 진수 직전. 나는 사수인 ㅇ형님을 따라 마지막 용접에 들어갔다. 곧 움직여야 할 배 안은 너저분했던 과거를 싹 청산한 채 깔끔한 회색 공간이 되어 있었다. 오늘 할 일은 ‘악세솔 메공’이라 부르는 작업. 악세솔은 둥근 철문 형태인 일종의 임시 진입로다. 해당 구역 작업이 완전히 끝나면 도로 용접해서 틀어막는다. 비유하자면 열어놓았던 미로의 벽을 다시 세우는 꼴. 정식 명칭은 ‘액세스 홀’(access hole)이지만 누구도 본명으로 부르지 않았다.(“그러니까 액세스 홀인 거죠?”라고 물었다가 ㅇ형님한테 혀에 치즈 발랐냐고 한소리 들었다.)

메공 작업을 하려면 용접이 흘러내리지 않게 홀 반대편을 세라믹 보강제를 붙여 막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다른 모든 악세솔이 다 막힌 상황. 목적지로 가려면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야 했다. ㅇ형님은 길을 알려주며 한층 지날 때마다 꼭 사인펜으로 마킹하라고 했다. 길을 잃기가 쉽다나. 과연, 잠깐 길을 잃어도 다른 통로로 도착할 수 있었던 평소와 달랐다. 대강의 경로만 알아선 목적지에 당도하기가 쉽지 않았다. 20분 가까이 헤매다가 간신히, 사실상 운 좋게 마지막 악세솔 반대편에 도착했다.

“늦었십니다!” “그마이 하면 잘 찾았다! 빨랑 세라믹 붙이라!”

세라믹 보강제 붙이는 일은 단순하지만 꼼꼼해야 했다. 대충 붙이면 용접물이 반대편으로 흘러서 비드가 끊겨버린다. 용접 비드는 끊길 때마다 모양도 못생겨지지만 품질 평판도 더불어 나빠졌다. 행여 과열로 보강제가 떨어질라 여러겹을 떡칠하듯 바른 다음 망치로 악세솔을 두들겼다. 용접을 시작해도 된다는 신호였다. 곧 연기와 함께 방진 마스크를 뚫는 독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 오전 작업은 이로써 끝. 밥을 먹고 나선 정말 힘든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라믹 보강제를 떼고 악세솔을 빙 둘러싼 비드를 높낮이가 일정하고 매끈한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용접 뒤편을 손본다는 뜻의 ‘백 수정’이라 불리는 작업. 일 자체는 단순했다. ㅇ형님의 용접 솜씨 덕에 손볼 구석이 별로 없었다. 그저 장비를 들고 가는 그 자체가 힘들었다. 용접기 연장선이며 공기 호스 같은 중장비를 선박 최상층에서 최하층으로 옮기고, 이를 다시 선박 최하층에서 최상층까지 들고 올라가야 했다. 사람들이 ‘노가다’로 통칭하는 일의 상당량이 이런 식이다. 장비만 쓸 수 있다면 별일도 아닌데, 그 장비를 동원하기가 어려워서 일이 힘들다. 백 수정을 끝내고, 다시 장비를 갈무리한 다음 바로 옆 배로 이동까지가 오후 일정. 일 자체는 무난히 끝났지만 후유증이 크게 남았다. 집에 돌아오니 몸이 무겁고 어지러웠다. 편의점에서 산 감기약을 한시간마다 마셨지만 열이 가시질 않았다. 망했다. 자고 일어나면 몸살이겠거니. 마음의 준비를 했고 병마는 막힘없이 찾아왔다. 연차가 없어 결국 무급 휴가를 내야만 했다. 다음주 토요일은 첫 배 진수날. 결론만 말하자면 구경 못 했다. 출근 일정이 없었다. 반 단톡방을 보니 진수 때문에 다리를 폐쇄한다는 안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지도만 덜렁 놓여 있었다. 월요일에 출근했을 땐 배가 사라지고 휑한 도크 위에서 바다 비린내만 올라올 뿐이었다.

얼마 후 3월 몫 임금을 받았다. 유달리 힘든 한달이었다. 하루를 무급으로 쉬었지만 토요일 세번 출근했고 4일은 1시간씩 잔업했다. 적어도 240만원 정도는 받겠지, 예상은 맞았다. 세금 포함 240만원. 여기서 온갖 돈 다 떼고 나니 204만원이 나왔다. 공제 항목 중엔 4대 보험을 빼고 안전장구 명목으로 5만7천원, 회식비로 2만원, 간식비 4400원이 있었다. 안전장구 비용 청구 이유가 몹시 황당했다. 비옷은 필수 장구가 아니니 지급 대상이 아니란 논리였다. 비 올 때 우산이라도 쓰고 작업하란 얘길까. 회식비랑 간식비는 도대체 왜 노동자한테 전가할까. 이해할 수 없었다. 호황이라고 떵떵거리더니 이렇게까지 좀스럽게 굴어도 되나? 페이스북에 급여명세서를 올렸다. 다음날 전화기에서 불이 났다. 그럴 수밖에, ‘저임금’이라는 단어와 잔업 특근을 다 해도 204만원이 찍힌 급여명세서는 같은 뜻이지만 파급력이 전혀 달랐다. 한 언론사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해당 기사는 엑스에서만 430리트위트, 5만뷰를 달성했다. 아래 연관 기사들로 조선소는 요즘 사람을 못 구해 곡소리 중이란 제목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10년 뒤엔 어쩌려고 이러나. 원청 조선소의 태도는 사람 따윈 언제든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처럼 느껴졌다. ‘저숙련자는 저임금을 줄 수밖에 없다’, 일하려는 사람이 많을 땐 어느 정도 먹히는 이야기였다. 이젠 아니다. 현장 가면 30대 중반이 막내고, 기껏 온 외국인 노동자도 학을 떼는 마당에, 과연 노동자 유입과 유지가 가능하겠는가. 이제는 ‘저숙련’ 뒤에 있던 ‘강도’, 현장 말로 ‘빡셈’에 대한 대우를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옛날에야 잡부, 시다라고 천시하며 막내에게 ‘짬 때릴 수 있었던’ 그 노동에 정당한 대가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딜 가나 최저임금을 받는 현실이라면 노동자는 당연히 덜 힘든 일을 택한다. 그렇다고 조선소가 당장 힘든 노동을 대가로 미래에 후한 대접을 약속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이미 10년 전 불황기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 사람들은 이제 조선소가, 조선업이 평생직장 평생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마당에 그나마 들어오는 사람들이나마 제대로 대우해서 신뢰를 줘야 하지 않겠냔 말이다. 정신 좀 차리소, 쫌!

천현우 | 창원시에서 여러 회사 전전하며 10년간 제조업 노동자로 일했다. 서울 성수동 미디어플랫폼 얼룩소(alookso) 등에서 2년 반 일하다 다시 경남으로 돌아왔다. 최근까지 거제 조선소에서 일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을 했다. 산문집 ‘쇳밥일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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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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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보자#brNp
    2026.04.0310:11
    조선소 일 진짜 힘들어요. 힘들어서 기피하고 사람 구하기 어려운 업종인만큼 대우를 잘 해줘야되지 않을까요.
  • 박영준 cashwalker#1EL2
    2026.04.0307:35
    과연 200일까? 그것도 문제지만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
  • 독사
    2026.04.0308:20
    그나마 조선소는 좀나은 수준이네 인천 목재소는 사양길에 들었지만 숙련공이 삼백정도 초보자는 최저임금 이다
  • KRFTDERU#0Eww
    2026.04.0315:02
    일용직 단가로 들어오거나 인맥으로 들어 오거나 인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인맥없이 조선소 온다고?
  • 김민자#b7bO
    2026.04.0318:09
    지들이 펑펑 중소기업 월급 너무 짜요 결혼함 힘들어요 그러니 않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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