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도 각자 다른 일 하는 스타일 유행
가족처럼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없지만
개인 지키면서 타인 온기 느낄 수 있어
요즘 청년층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각할모'라는 모임이 눈길을 끈다. '각자 할 일을 하는 모임'의 줄임말이다. 카페나 도서관에 함께 모이지만, 모두가 같은 일을 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은 노트북으로 일하며, 또 다른 사람은 시험공부를 한다. 모여서 각자 공부하거나 코딩하는 '모각공', '모각코'도 비슷하다. 함께 있되 각자 시간을 보내고, 혼자 일하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닌 모임이다.
이런 만남은 디지털 시대의 달라진 관계 방식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가족, 학교, 직장, 지역사회처럼 이미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대부분의 관계가 이루어졌다.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친밀감을 쌓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시간과 감정과 노력을 쏟았다. 하지만 지금은 관심사와 일정이 맞는 사람을 온라인에서 찾아 그때그때 함께할 수 있다. 같은 동네에 살아도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모임에서 만나 공부나 운동을 함께한 뒤 각자 일상으로 돌아간다.
관계의 모습과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당일 약속을 정해 만나는 '번개모임'이 있는가 하면, 일정 기간 목표를 함께 실천하는 온라인 챌린지도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고양이를 키우는 '냥집사'들이 반려묘 이야기를 나누고,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조리법과 실패담을 공유한다. 이런 소규모 취향 공동체는 실제 만남 없이 온라인에서만 이어지기도 한다. 얼굴을 모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공통의 관심사가 생기면 대화할 이유가 생긴다. 디지털 기술은 오프라인 만남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는 관계도 가능하게 해준다. 한 공간에서 각자 일하는 각할모, 원격으로 취향을 나누는 온라인 공동체 등 다양한 유형의 모임들이 공존한다.
한편 이렇게 연결이 많아지는 것과 친밀감의 정도는 별개의 문제다. 소셜미디어에서 수많은 사람과 이어져 있는 핵인싸도 늘 외로울 수 있고, 서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해도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을 얻을 때도 있다. 각할모에서는 굳이 대화를 이어가거나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혼자서는 미루기 쉬운 일을 시작하는 데 서로의 존재가 좋은 자극이 되기도 한다. 또한 온라인 취향 공동체에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의 짧은 답글 하나가 큰 위안을 주는 경우도 많다.
'혼밥', '혼술'이 외롭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이라면, 각할모는 자기 시간을 지키면서도 타인의 온기를 느끼려는 방식이다. 누구에게나 혼자만의 시간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혼자이고 싶지는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우리는 각자 삶의 주인이길 바라면서도 타인과 이어지길 원한다. 관계의 가치는 다면적이다. 얼마나 오래, 가까이 붙어 있느냐가 중요한 경우도 있고, 서로 독립성을 인정하며 함께하는 게 중요할 때도 있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는 친밀하지 않은 사이에서도 새로운 정보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약한 연결의 힘'을 이야기했다.
각할모는 모든 관계가 깊고 오래 지속되어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님을 보여준다. 짧은 만남에서 얻은 집중과 위안, 온라인에서 주고받은 작은 도움도 소중한 경험이다. 이런 방식의 관계가 가족이나 오랜 친구처럼 어려운 순간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쉽게 연결되는 만큼 쉽게 끊어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깊이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삶을 오래 함께한 사람, 일정 기간 목표를 함께하는 사람, 화면 너머에서 취향을 나누는 사람 등 다양한 방식의 관계는 각각 의미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를 만날 수 있는지뿐 아니라 어떻게, 어느 정도 거리에서 관계를 맺을지도 선택할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 일을 할 수도 있고, 만나지 않고도 원격으로 관심사를 나눌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인간관계는 친밀함과 독립성 사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