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와 같은 참패”…미 공화당, ‘트럼프 결별·내전’ 후폭풍

지난 1일(현지시각) 미국 아이오와주 더뷰크 지역공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려 취재진에게 발언하는 동안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왼쪽)이 듣고 있다. 더뷰크/AFP 연합뉴스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연방 상·하원 다수당을 모두 잃는 역사적 참패를 당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책임론이 당내에서 분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이 패배의 책임을 낙선 후보들에게 돌리는 가운데 공화당 내부에서는 오히려 대통령이 참패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백악관 핵심 참모진의 경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4일(현지시각) 공화당 내부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공화당의 한 베테랑 선거 전략가는 엔비시(NBC) 뉴스에 “대학살이다”라며 석유값과 인플레이션, 의료비 등 전반적인 생활비 문제에 부패와 미-이란 전쟁까지 겹친 것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공화당 소속 한 연방 상원의원은 선거 결과를 “좀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대재앙”이라고 말했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기자들에게 “지난 100년을 통틀어도 보기 드문, 공화당이 멸종 위기에 몰린 것과 같은 참패”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쇠퇴하면서 권력투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예고도 나온다. 공화당의 한 선거 관계자는 엔비시에 “이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우리는 빠르게 포스트 트럼프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며 “트럼프와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존 튠 상원 원내대표 등 많은 사람의 시대가 끝났다. 공화당 내부에서 내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낙선 후보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가 투표용지에 있었다면 우리가 이겼을 것”이라며 “유세장마다 수천 명씩 몰려들었고 엄청난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후보들에게 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지지한 일부 후보들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고 유권자들이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4선 도전에 실패한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를 향해서는 ‘무늬만 공화당원’(RINO)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즉각 반발이 터져 나왔다. 상원 공화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이건 후보 자질 문제를 넘어선 대학살이다. 트럼프가 이 일을 저질렀다”고 직격했다. 이번 선거에 불출마한 돈 베이컨 공화당 하원의원(네브래스카)도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며 “이번 선거는 트럼프에 대한 국민투표였다”고 반박했다. 뉴욕주에서 낙선한 마이크 롤러 공화당 하원의원도 시엔엔(CNN)에 “예수 그리스도가 출마했어도 졌을 것”이라며 공화당에 극도로 불리했던 선거 분위기를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신축 중인 연회장 공사 현장을 둘러보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보수 성향 월스트리트저널도 이날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참패의 “주된 설계자”라고 지목하며 최소 3개 주의 상원 선거 패배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텍사스주에서는 공화당 지도부가 선호했던 존 코닌 현역 상원의원 대신 논란이 많은 켄 팩스턴 주 법무장관을 지원했고,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톰 틸리스 상원의원과의 갈등으로 그의 재출마 포기를 초래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지난 7월 숨진 린지 그레이엄 전 상원의원의 동생 다를린 그레이엄을 정치 경험 부족 우려에도 후보로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세 주 모두 민주당에 상원 의석을 내줬다.

책임론은 백악관 핵심 참모진으로도 번지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입법담당 국장을 지낸 마크 쇼트는 소셜미디어 엑스에 “이번 백악관만큼 상·하원 후보들의 선거를 망친 행정부를 떠올리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전 선거캠프 대변인 캐럴라인 선샤인은 파이낸셜타임스에 보낸 메시지에서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트럼프가 2024년 구축한 지지 연합이 오늘 밤 잿더미가 됐다. 와일스가 공화당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의 베테랑 전략가 존 피어리도 로이터통신에 “백악관 인사들을 싹 바꿔야 한다”고 경고했다.

지도부 교체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이날 오전 직원들과의 전화 회의에서 차기 의회의 공화당 하원 소수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후임 자리를 놓고 스티브 스컬리스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와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공화당 하원 지도부 경선은 오는 10일 치러질 예정이다.

참패를 계기로 공화당이 전통적인 보수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구도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존 커티스 유타주 연방 상원의원은 개인 뉴스레터에 올린 글에서 “로널드 레이건 같은 지도자들은 제한된 정부, 자유무역, 확고한 외교와 세계적 리더십, 재정적 책임을 옹호했다”며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우리 당은 한때 우리를 정의했던 원칙에서 꾸준히 멀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선거 결과는 경종이 돼야 한다”며 “언론이나 여론조사, 유권자를 탓한다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우선 거울 속의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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