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요구 거부하면 형사처벌 우려…제출하면 개인정보 논란
기기변경 내역 요구 2년째 반복…통신업계 "명확한 기준 필요"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오지은 기자 = 여야 정치권이 특정 인사의 휴대전화 기기변경 내역 등 통신 기록을 잇달아 요구하면서 이동통신 3사가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국회의 적법한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요구에 응하면 개인정보를 제공했다는 비판과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는 법에 따라 자료를 제출하는 민간 사업자가 정치적 공방의 부담까지 떠안고 있다며 국회가 자료 요구의 범위와 절차,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명확한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 대법원장까지 기기변경 자료 요구…여야 공방 속 이통3사 부담
30일 정치권과 통신업계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의 요구로 SK텔레콤[017670]과 KT, LG유플러스[032640]가 제출한 조희대 대법원장의 기기변경 관련 자료를 열람했다.
조 대법원장의 가입 통신사인 SK텔레콤은 요구 기간인 2024년 12월 1일 이후 기기변경 내역이 없다고 회신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사법부 수장의 기기변경 내역을 확인하려 한 것을 두고 '사찰'이라고 비판했고, 자료를 요구한 의원 측은 국회법과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적법한 절차였다고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통신사가 법적 의무가 없는데도 자의적으로 판단해 개인정보를 제출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논란은 자료를 제출한 통신사로도 번졌다.
국회의 관련 자료 요구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반복됐다.
2024년 12·3 비상계엄 직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번호이동·신규개통 내역이 각 통신사가 제출한 자료를 통해 공개됐고, 지난해 4월에는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와 류희림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장, 같은 해 9월에는 지귀연 부장판사의 기기변경 이력이 잇따라 드러났다.
업계에 따르면 가입 통신사를 특정하지 않은 자료 요구는 3사 모두에 전달되며 해당 인물이 가입자가 아니면 '해당 없음'으로 회신한다.
통신사들은 모두 같은 법적 근거에 따라 자료를 제출해왔다는 입장이다.
◇ 자료 제출 거부하면 형사처벌…업계 "국회가 명확한 기준 마련해야"
국회증언감정법 제2조는 국회의 안건 심의나 국정감사·국정조사 관련 서류 제출 요구에 대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한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18조 제2항도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 등을 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제공이 가능한 예외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업계는 이렇듯 적법한 의결을 거친 국회의 요구를 민간 사업자가 자체 판단으로 거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설명한다.
다만 국정감사법 제8조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계속 중인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소추에 관여할 목적으로 감사 또는 조사하는 일을 금지한다.
통신업계는 해당 조항이 국회의 조사권 행사에 관한 제한으로, 통신사에 자료 요구의 적법성을 독자적으로 심사해 거부할 권한을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특히 통신 정책과 법안을 다루는 과방위의 요구라는 점도 통신업계엔 부담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법 조문대로 내면 개인정보를 넘겼다는 비판을 받고, 자체 해석으로 거부하면 처벌과 국회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부 법률 검토를 거쳐 법에 근거해 일관되게 제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사기관의 가입자 정보 요청과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적용되는 법적 절차가 다르다는 점도 제도적 쟁점으로 꼽힌다.
헌법재판소는 2022년 7월 전기통신사업법상 수사기관의 가입자 정보 요청에 사후 통지 절차가 없는 것은 적법절차 원칙에 어긋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2023년 12월 법 개정으로 정보주체에 대한 통지 의무가 도입됐다.
수사기관의 가입자 정보 요청에는 통신사가 '응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이 적용되지만 국회의 적법한 자료 제출 요구에는 응할 의무가 부과된다.
하지만 국회에 자료가 제출됐다는 사실을 정보주체에게 통지하는 절차는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통신업계는 국정감사 목적과의 관련성, 요구 기간·항목의 최소화, 위원회 의결 여부와 정보주체 통지 등에 관해 국회가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통사 관계자는 "통신사는 특정인을 겨냥해 판단하는 주체가 아니라 법이 정한 의무를 이행할 뿐"이라며 "국회가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주면 그에 맞춰 따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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