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프런티어AI 성공 가능성 작아"…'AI 중견국 연합' 제안
"한국 HBM은 핵심 협상 자산…전략적 입지 강화해야"

[연합 AI 플랫폼 생성 이미지]
(서울=연합뉴스) 권하영 기자 = 한국이 인공지능(AI) 기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독자적인 프런티어(최첨단) AI 모델 개발에 주력하는 전략은 성공 가능성이 작다는 유럽 AI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막대한 자금과 인재를 투입해 글로벌 선도 기업을 추격하기보다는 해외 최첨단 AI 모델에 대한 안정적인 접근권을 확보하고, 반도체와 제조업 등 기존 산업 경쟁력을 협상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 "독자 최첨단 AI 개발 전략에 회의적"
유럽의 AI 미래 시나리오 보고서 '유럽 2031' 공동 집필진은 28일 연합뉴스에 제공한 서면 답변에서 "독자적인 프런티어 모델 개발을 한국 AI 주권 전략의 핵심으로 삼는 것에는 회의적"이라며 "한국이 독자적으로 선두에 있는 AI 개발사들을 따라잡을 가능성은 작다"고 밝혔다.
'유럽 2031'은 유럽의 민간 AI 정책 연구기관 아르크 재단(Arq Foundation) 소속 연구진과 옥스퍼드대 AI 거버넌스 연구자, AI 산업 전문가 등 8명이 공동 집필한 미래 시나리오 보고서다.
AI 기술 발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유럽이 경제·안보적 자율성을 잃을 수 있다는 가상의 미래를 그리면서 기술 주권 확보와 국제 협력 전략에 관한 정책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7일 서울 용산구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AI 프론티어 국제 심포지엄 2025'에서 AI 석학 좌담회를 하고 있다. 2025.10.27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이들은 최첨단 AI 모델 개발 경쟁에 뛰어들려면 막대한 자금과 인재, 인프라는 물론 강력한 정치적 의지까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유럽이 본격적인 개발 경쟁에 나설 경우 3년간 약 8천억유로가 필요하다는 독립 연구 프로젝트의 추정치를 인용하며 "이는 한국을 대상으로 한 비용 추산은 아니지만 과제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도가 실패할 경우 안정적인 AI 접근권을 확보하는 데 쓸 자원만 줄어들 것"이라며 자체 모델 개발에 대한 투자 우선순위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특화 모델이나 준프런티어급 독자 모델은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산업용 AI 서비스를 뒷받침하는 데 여전히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한국이 최첨단 AI 기술의 독자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미국과의 관계에서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기술 접근을 제한하거나 다른 형태의 압박을 가할 수 있으며, 특히 미국의 안보 보장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갈등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이 18일 서울 종로구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주요 AI 기업과 가진 독자 AI 관계 기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3.18 jieunlee@yna.co.kr
◇ "AI 주권은 기술 소유보다 선택권 확보"
이들이 제안한 AI 주권 전략의 핵심은 모든 기술을 직접 소유하기보다 해외 선도 모델을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한과 전략적 선택권을 갖추는 것이다.
우선 AI 데이터센터 등 국내 호스팅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되 이를 해외 최첨단 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이용 권한 보장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공급망을 활용해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특히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생산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핵심 협상 수단으로 꼽으며 "한국산 HBM 공급 물량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만큼 추가 생산 능력과 장기 공급 계약을 지렛대 삼아 해외 최첨단 AI에 대한 예측 가능한 접근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봤다.
이와 함께 해외 프런티어 AI를 국내 제조업 역량과 산업 데이터와 결합해 핵심 자산은 국내에 유지하면서 미국 AI 개발사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해외 모델 이용 조건을 협상하고 기술 의존도를 평가할 수 있는 AI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첨단 AI 시스템의 성능과 국제 협약 준수 여부를 검증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국과 유럽 등 AI 중견국들이 협력해 특정 해외 기업에 대한 의존 위험을 분산하는 구상도 내놨다.
이들 국가가 공동 협상을 통해 선도 AI 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하고 인프라를 공유하는 한편, 산업 투자와 경제적 보복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비용까지 분담하는 협력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충분한 자금과 인재, 정치적 의지를 전제로 달았다.
kwonh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