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X, 5·18 다룬 뒤 방영중단 청원까지…문화계 “창작 자유 위축될라”

드라마 ‘닥터 엑스(X): 하얀 마피아의 시대’ 스틸컷. 에스비에스(SBS) 제공

드라마 ‘닥터 엑스(X): 하얀 마피아의 시대’가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이야기를 다룬 뒤 방영 중단 청원까지 등장하는 등 논란이 번지고 있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로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창작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4일 방영된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닥터 엑스’ 6화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총상을 입고 46년간 고통받아온 환자 오상범(하성광)의 사연을 그렸다. 머리에 박힌 총알 파편을 당시 의학 기술로 제거하지 못해 평생 통증과 환각에 시달려온 환자를 주인공인 천재 의사 계수정(김지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한다는 내용이다.

해당 회차는 전국 기준 시청률 19.5%로 자체 최고치를 기록하며 관심을 모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을 다뤘다는 이유로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방영 당일 국회전자청원 국민동의청원에는 ‘에스비에스 닥터 엑스 드라마 방영 중단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정치적 논쟁이 있는 5·18을 뜬금없이 드라마에 활용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닥터 엑스’ 갤러리도 성명을 내어 “제작진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면서도 “실제 역사적 사건을 등장시켰다면 그 선택이 의료 서사와 인물에 어떤 의미를 더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닥터 엑스’의 이옥규 책임 프로듀서(CP·시피)는 방영 당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닥터 엑스’ 포스터와 함께 영어로 ‘두렵지 않다’(no fear)는 문구를 올렸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것에 대해 반발이 있더라도 헤쳐나가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드라마 ‘닥터 엑스(X): 하얀 마피아의 시대’ 6화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SBS) 제공

최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며 곤욕을 치른 데 이어 ‘닥터 엑스’까지 정치적 논쟁의 도마에 오르는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작품 자체를 향한 문제 제기보다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뤘다는 점을 이슈화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로 보인다”며 “콘텐츠에 일종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헌식 중원대 사회문화대 특임교수는 “과거에도 드라마 ‘모래시계’(1995)를 포함해 5·18을 다룬 작품들이 있었는데 당시엔 논란이 되지 않았다”며 “5·18을 다뤘다는 이유로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은 역사적 퇴행”이라고 짚었다.

이런 논란이 반복되면 창작자들이 근현대사를 소재로 삼는 것 자체를 꺼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헌식 교수는 “이런 식의 청원, 나아가 고소, 고발, 불매운동, 국정감사 소환 등의 압박은 근현대사에 관한 작품을 제작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그런 작품에 대한) 불편함을 가중시킨다”며 “‘닥터 엑스’ 시피는 적극적으로 의사 표명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보통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관련 논란을 접하게 되면 위축되기 쉽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조회 124 스크랩 1 공유 0
댓글 0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