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자동차 배터리 제조공장에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혈중 납 농도를 낮추기 위해 투약된 것으로 알려진 킬레이션 주사제가 전국 동네 의원급 의료기관에 가장 많이 유통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으로는 서울 강남구가 킬레이션 주사제 공급량이 가장 많았다.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진숙 의원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3년부터 올해 8월까지 3년8개월 동안 전국 의료기관에 공급된 킬레이션 주사제 물량은 53만1230개, 공급 금액은 62억9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동네 의원급 의료기관에 들어간 물량은 전체의 73.3%인 38만9470개, 공급 금액은 46억1800만원으로 전체의 73.4%를 차지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강남구에서 킬레이션 주사제 공급 물량이 가장 많았다.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 전국 시군구의 킬레이션 주사제 공급 현황을 보면, 서울 강남구가 1만7810개로 공급물량 1위였다. 이 가운데 동네 의원급이 1만6880개로 전체의 94.8%를 차지했다.
킬레이션 주사는 혈관 속 납 등 중금속을 소변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해독 치료제다. 중금속이 배출될 때 칼슘, 칼륨, 마그네슘 등 필수 미네랄까지 함께 몸 밖으로 빠져나가 신장 손상, 심혈관계 독성, 전해질 불균형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혈중 납 농도가 최소 70마이크로그램(㎍)을 넘는 등 심각한 중독 상황에서만 투약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처방 제한이나 명확한 투약 기준이 마련돼있지 않아 병의원에서는 노폐물 배출, 만성 피로 해소 등을 돕는 영양 주사로 둔갑해 소비돼왔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날 성명을 내어 “킬레이션 주사제를 피로 회복이나 항노화 등의 목적으로 홍보·사용하는 사례와 관련해 부적절한 의약품 사용이 건강에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최근 자동차 배터리 제조사인 디엔(DN)오토모티브의 울산공장에서 회사가 특수건강검진을 앞둔 직원들에게 킬레이션 주사를 비타민 주사라고 속여 반복 투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울산공장에 대해 안전보건감독을 시행해 68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을 적발해 과태료 4620만원을 부과하고, 기준치 5배가 넘는 납이 검출된 공정에 사용 중지 명령을 내렸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