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전 입양기록 찾아헤매는 현실 여전…화해엔 진실 필요"

'입양 진실의날' 행사 참석 한국 온 해외입양인들, 등본 발급부터 험난한 여정

과거 입양기관 '조작·누락' 불법행위로 엇갈린 기록에 두 번 울어

입양기록물 관리 일원화에도 불신 못 거둬…"더는 거짓말 위에서 살 수 없어"

서류 발급 위해 주민센터 찾은 해외입양인들
미국한국인진상규명그룹(USKRG) 소속 해외입양인들이 7일 주민등록등본 등을 발급받기 위해 종로구의 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촬영 양수연]

(서울=연합뉴스) 양수연 기자 = "나에 대한 어떤 기록이 있나요? 전부 다 알고 싶어요."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주민센터.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해외입양인 10여명이 어색한 듯 차례로 민원실 안으로 들어섰다.

각자의 손에는 여권, 신분증, 미국과 한국의 행정기관·입양기관 등에서 받은 낡은 서류 뭉치 등이 들려 있었다. 손으로 다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료를 캐리어에 담아 끌고 온 입양인도 있었다.

미국한국인진상규명그룹(USKRG) 소속인 이들은 이날 자신의 주민등록 기록이 남아있는 서류들을 발급받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됐다. 양부모 아래에서 미국인으로 자랐으며 대부분은 한국말도 하지 못한다.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제적등본. 내국인은 주민센터를 방문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1분 만에 발급받을 수 있는 간단한 서류들이지만, 해외입양인은 이 서류 한 장을 받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만 한다.

데이비드 캐슬랜씨는 현재의 이름으로 발급된 미국 여권과 입양 전 이름인 '신기수'가 적힌 행정서류의 사본을 창구에 내밀었다.

이를 확인한 주민센터 직원은 "신기수씨와 이 여권 주인이 같은 사람인지 어떻게 입증할 수 있나요?"라며 입양 관련 서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스템에 남아있는 자신의 모든 기록을 확인하고 싶은 캐슬랜씨는 "거기에는 어떤 서류가 있죠", "그러면 정확히 무엇을 더 가져와야 하나요", "어떤 법에 근거한 것인지 말해주세요" 물었고, 직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직원이 관련 지침을 조회하고 안내하면 입양인들이 서류를 내밀며 되묻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하염없이 시간이 흘렀고, 결국 주민센터가 문을 닫는 시간까지 씨름이 계속됐다.

이날 서류 발급 과정에서 통역을 맡은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 공동대표 한분영씨는 "늘 이렇다. '이 서류를 받고 싶으면, 저걸 가져와야 한다'면서 끝없이 돌고 도는 일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입양이란 건 결국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뚝 잘라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 것의 문제인데, 그 한국인 정체성을 찾아보겠다고 돌아오면 '(당신이 당신이라는 걸) 증명할 수가 없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꼬집었다.

더스틴 스미스(석경호)씨가 발급받은 제적등본
1987년 4월 '일가 창립편제'된 뒤, 1989년 7월 미국 국적을 취득했고, 1991년 일가가 말소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더스틴 스미스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렇게 받아낸 기록이라고 해서 속 시원한 진실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날 더스틴 스미스(39)씨가 발급받은 제적등본에는 그와 가족 관계로 엮여 있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제적등본에는 석경호(한국 이름)를 호주로 한 일가(一家)가 창립편제된 뒤 국제 입양으로 말소됐다고 나와 있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고아일 경우 이렇게 처리된다.

그의 입양을 알선한 동방사회복지회에서 발급한 서류에는 이것과 일치하는 내용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 뒤섞여 있다. 그는 생부·생모에 관한 정보가 있는 페이지도, '기록 없음'(no records)이라고 나와 있는 페이지도 모두 가지고 있다.

스미스씨는 "주민센터에서 혹시라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생일이나 이름,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 했다. 아무런 기록이 없을 줄은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더스틴 스미스(석경호)씨의 입양기록이 담긴 서류
왼쪽 서류에는 생부와 생모의 정보가 적혀 있지만, 오른쪽 서류에는 '기록 없음'(no records)라고 나와 있다. [더스틴 스미스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해외입양인들은 이렇게 국가아동권리보장원, 양국의 입양 알선기관, 주민센터, 경찰서 등 자신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을 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고 정보공개청구를 한다. '정체성을 알 권리'를 스스로 되찾기 위해서다.

해외입양 과정의 구조적 폭력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22년의 일이지만, 개별 입양인들의 이러한 고군분투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각 입양국에서 '진상규명그룹'이 잇따라 결성된 것도 이런 과정에서다.

이날 주민센터를 방문한 USKRG 회원들은 지난 9∼10일 국회에서 열린 '입양 진실의 날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일주일가량 한국에 머물렀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13일 서울 중구의 한 회의실에서 기자와 만난 이들은 거듭 '기록 찾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미국한국인진상규명그룹(USKRG) 소속 해외입양인들
미국한국인진상규명그룹(USKRG) 소속 해외입양인들이 13일 서울 중구의 한 회의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촬영 양수연]

자기 뿌리를 알고 싶은 해외입양인들은 관련 기록을 모두 모아 조각들을 짜 맞추고 싶어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1950∼1990년대 해외입양 과정에서 입양기관이 서류 조작, 아동 납치 등 수많은 불법을 자행했던 만큼, 현재 남아있는 기록 역시 은닉되거나 불충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셸 레코(53)씨는 "애초에 입양기관들이 당시 입양 과정에서 따라야 했던 절차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문서가 존재했어야 하는지, 그래서 무엇이 누락된 건지도 알 수가 없다"며 "기록을 제공하는 과정에서도 민원을 일관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해외입양인들은 받은 서류들을 서로 공유해 각자 어떤 서류를 받지 못했는지 확인한 뒤 이를 다시 청구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고 한다.

과거 무분별한 해외입양이 이뤄졌던 데 더해 기록마저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된 것은, 민간 입양기관이 사실상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아동을 입양 보낼 수 있었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작년 7월 법 개정을 통해 아동 입양 체계가 민간 중심에서 국가 책임 방식으로 전면 개편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모든 입양기록물 관리와 입양 관련 정보 공개 업무도 국가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일원화됐다.

그러나 해외입양인들은 여전히 기록물 관리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레코씨는 "입양기관에 있던 우리의 기록이 전부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이관됐는지부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며 "입양기관들은 입양 과정에서 불법 행위들을 저지른 책임이 있는 당사자들인데, 왜 그 증거들을 넘기겠나"라고 반문했다.

제도가 바뀌었음에도 정작 기록을 찾아 헤매는 밑바닥 현장에서는 같은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한분영씨는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도 발효됐고, 높은 사람들이 연설도 한다. 대통령은 '유감을 표한다. 모든 기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돕고 싶다. 한국으로 와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으로 왔을 때, 물론 많은 도움이 있긴 하지만, 여기 말단에서는(down here)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3기 진실화해위 출범, 국가폭력 피해자단체 공동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3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는 2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 앞에서 열린 국가폭력 피해자단체 공동 기자회견에서 1호 사건 신청자인 입양인 2세 마릿 킴이 발언하고 있다. 2026.2.26 scape@yna.co.kr

지난해 3월 2기 진실화해위는 1960∼1990년대 해외입양 과정에서 최소 56명이 인권침해를 당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국가가 사과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3기는 2기에서 조사 중지된 해외입양 인권침해 사건 311건에 더해 새로 접수된 520건(8월 31일 기준)을 조사할 예정이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번 진실화해위 조사를 통해 최대한 많은 신청인이 잃어버린 정체성의 진실에 가닿고, 향후 자신의 기록을 찾는 입양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제도적 변화로 연결되기를 해외입양인들은 염원하고 있다.

덴마크로 입양됐던 요아킴 베른씨는 지난 10일 입양 진실의 날 국제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화해에는 말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진실이 필요합니다. 우리 입양인들은 더 이상 거짓말 위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see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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