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배 |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최근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신흥 기술의 발달이 현란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기술 혁신을 위한 기업 간 경쟁에 각국 정부의 진흥·규제 정책도 가세하여 국가적 차원의 총력 경쟁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신흥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다 보니 최근에는 이를 국가 안보의 논리를 내세워 통제하려는 ‘안보화’의 경향도 등장했다. 실제로 신흥 기술이 제기하는 안보 위협 자체가 커진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생활 속 신흥 기술의 ‘안전’ 문제가 양적으로 늘어나고 다양한 이슈와 연계되면서 국가적 차원의 ‘안보’ 문제가 되곤 한다. ‘전통 안보’의 시각으로만 볼 수 없는 ‘신흥 안보’의 위협이 창발하고 있다. 새로운 안보 위협의 발생은 국제 안보 환경을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안보 패러다임의 변화마저도 거론케 한다.
국제 안보 지평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올해 초 중동에서 발생한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에서 나타났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의 안보 위협이 뜨거운 쟁점이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은 최초의 ‘인공지능 알고리즘 전쟁’이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인공지능이 전쟁에 사용됐다는 의미를 넘어서 전쟁의 성격을 바꿨다는 말까지 나왔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스템이 짧은 시간 내에 수천개의 표적을 식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엄두도 못 낼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작전 계획을 생성해서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 시스템의 오인으로 민간 시설인 이란의 초등학교가 공습당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향후 인공지능의 군사적 활용이 초래할 안보 위협과 윤리·규범 논쟁의 본격적 촉발을 예견케 하는 대목이다.
인공지능 활용 드론과 우주 자산의 결합도 관건이다. 인공지능 도입이 저궤도 위성의 군사화와 무기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 모델이 자율적으로 취약점을 찾아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는 에이전트 인공지능의 위협도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인공지능과 핵무기의 만남도 큰 화두다. 핵무기 체계의 인공지능 전환은 사이버 공격의 위협을 늘리고 기존 질서의 안정성을 해칠 요소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들 사례는 모두 국제 안보 환경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위협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신흥 기술이 제기하는 안보 위협의 출현 속도에 비하면, 이에 대응해서 새로운 질서와 규범을 마련하는 국제적 노력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미·중 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거세지면서 이러한 노력은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다. 강대국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생겨나는 국제질서의 ‘구조적 공백’도 문제지만, 신흥 기술 안보 위협에 대처할 노력의 부족이 낳을 ‘규범적 공백’도 심각한 문제이다. 미·중 두 강대국이 모두 질서 구축과 규범 형성의 전면에 제대로 나서지 않는, 이른바 ‘지제로’(G0)의 상황이 우려되기도 한다. 게다가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맞아 미국의 신흥 기술 정책이 기술 혁신과 규제 완화 쪽으로 그 축을 옮기면서, 그나마 그간 국제사회에서 진행된 국제 규범 모색의 행보마저 약화하는 조짐마저 보인다.
강대국들이 나서기만 믿고 손 놓고 있기엔 지금 신흥 기술의 안보 위협이 너무도 급박하게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중견국’이면서 ‘인공지능 강국’을 내세우는 한국도 신흥 기술 안보 규범의 모색을 위한 행보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승부 논리에 매몰된 강대국과 달리, 중견국으로서 한국은 좀 더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각으로 신흥 기술의 안보 위협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신흥 기술이 가져올 안보 환경의 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 이해를 모아내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엮어내는 중견국 외교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야말로 신흥 기술이 초래할 안보 질서의 변화를 수동적으로 맞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 중견국으로서 선제적으로 유의미한 의제를 제시하며 국제적 담론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신흥 기술 안보 규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마련하기 위한 국제적 차원의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다양하게 진행된 국제 규범의 모색 여정에서 한국은 중요한 외교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오는 9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신안보포럼(WESF)은 2021년부터 한국이 주도해서 리더십을 발휘해 온 중견국 외교의 장이다. 이번 세계신안보포럼에서도 정부, 국제 기구, 전문가, 민간이 함께 참여하여 새로운 안보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를 펼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