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청와대로 가는 이유 [세상읽기]

고영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총무국장이 근로간주제 폐기와 택시월급제 도입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한 지 100일이 된 지난 7월6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재명 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고 국장은 지난 3월29일 새벽 인천 남동구에 자리한 맹성규 국토교통위원장 사무실 앞 송신탑에 올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청와대 앞에 가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약자들에게는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하는가가 큰 고민거리다. 이미 안고 있는 문제도 해결해야 하지만 그 문제를 문제로 알려지게 하는 게 또 큰 과제다. 8월 하순에 ‘고영기 택시노동자 고공농성에 대한 시민사회지원 대책위원회’(지원 대책위) 회의가 열리니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간 회의는 어디에 서서 누구를 향해 말해야 하는가, 고심이 깊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냥 절박한 대로 진심 그대로 소리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회의에 참석한 인권 활동가, 비정규직노동자 활동가들은 잘 알고 있기에 회의는 때때로 공전했다.

회의는 서울 용산구에서 열렸지만 고영기 택시노동자는 인천 남동구 길병원사거리 근처 20미터 통신탑 위에 있다. 고영기는 택시노동자들이 일한 시간만큼 월급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당연한 이유로 이 글을 쓰는 9월1일 현재 157일째 고공에 매달려 있는데, 문제를 문제로 보이게 하고 싶어서 높은 데 올라갔지만 그의 목표는 성공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원 대책위가 꾸려지고 우리처럼 작은 단체에도 연락이 왔다. 회사에 속해서 택시를 모는 노동자들이 날마다 회사에 납부해야 하는 사납금을 없애고 월급제를 도입한 것이 2020년이라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제도가 자리 잡지 못하고 회사 택시노동자들은 여전히 사납금을 내고 부족분은 월급에서 제하는 관행이 없어지지 않았다. 택시회사들은 택시를 모는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제대로 지키는지 알 수 없다며 월급제를 하기에는 곤란하다고 버티고 있고 정부와 국회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고영기 노동자가 통신탑에 올라간 건 데이터가 다 기록되는 요즘 택시 시스템에서 왜 노동시간을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이냐는 반문이고, 택시완전월급제를 담은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이 올해 8월부터 시행될 참이었는데 왜 2028년으로 미뤘느냐는 정부·여당에 대한 질문이다.

찾아보니 택시노동자들이 월급제를 요구한 것이 1980년대 말부터라고 한다. 1990년대부터는 대선 공약에도 등장했고 2019년에는 여야 합의로 법안도 통과시켰다. 그때도 택시노동자들은 긴 시간 싸웠다. 그러니까 고영기 노동자의 고공농성은 이번에 법안을 2년 유예한 정부·여당에 대한 항의를 넘어서는, 왜 노동자의 요구를 뒤로 미루느냐는 역사적 질문이다. 택시산업의 경영상 어려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경영상 어려움은 항상 있다. 그 산업만의 특수성 같은 것도 있을 수 있다. 특수함에 적합한 보완책을 찾으면 된다. 그러라고 정부가 있고 국회가 있는 것 아닌가. 여기까지는 문제를 문제로 보이게 하고자 통신탑에 올라간 고영기 노동자와 아래에서 함께한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의 이야기다.

고공농성으로 말을 걸었지만 듣는 사람이 없거나 너무 적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지원 대책위 회의에 온 이들이 서로 나누고 방안을 찾고자 할 때, 약자의 이야기를 전파하기 위한 정밀하고 섬세한 수고와 또 다른 노동이 투여되어야 한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지원 대책위로 모인 활동가들은 연대의 말과 노래를 모아 ‘투쟁문화제’를 통신탑 아래서 열고자 준비하고 있는데, 가장 큰 목적은 고영기 노동자다. 공중에 떠 있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안도하라고 목소리를 모아 위로 보내는 일이다. 물론 한 사람의 시민이라도 관심을 표할 때 용기를 얻고 작은 언론사라도 펜과 카메라를 들고 찾아올 때 힘이 나니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울에서 기자회견도 열자고 한다. 같은 수도권이어도 인천보다 서울, 서울 안에서도 중심으로 갈수록 권한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청와대 이야기가 나왔다.

권한과 권력이 있는 이들은 제자리에 있어도 그들의 말이 퍼 날라지고, 비평되고, 해석되지만 약자들은 아주 작은 가능성을 찾아 장소를 찾아다닌다. 한곳밖에 갈 수 없다면 청와대 앞이다. 노동자들이 말할 곳을 찾아 청와대 앞으로 간다는 건 약자의 삶을 살피는 정치가 없어서이고 이미 많이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만 범람하는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이기도 하다.

그러나 150일이 넘는 날을 폭염과 폭우 속에 허공에서 몸을 구부린 한 사람이 있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있을 수는 없다는 이들의 연대를 보면서 고영기 노동자가 내려올 날이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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