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 경쟁에 대한 우려가 큰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낮고 하락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사교육 경쟁이 없었다면 평균 자녀 수가 30%가량 많았을 것이란 추정치도 공개됐다.
염민철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 교수는 2일 한국은행·경제정책연구센터(CEPR)·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공동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논문 ‘지위 경쟁, 집중 양육 그리고 한국의 저출산’(김성은 세종대 교수 등 공동집필)에서 자녀 교육을 다른 집 자녀와 비교하는 ‘지위 경쟁’이 사교육 지출을 사회적으로 과도한 수준까지 끌어올려 출산율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염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은 비교 동기의 강도를 반영한 모형으로 자녀 1인당 교육투자와 출산율을 도출하고, 세계가치관조사(WVS)의 ‘교육 걱정 지표’를 이용한 국가 간 비교, 학원 심야교습 시간 규제의 지역별·시기별 변화를 변수로 한 실증분석으로 이를 검증했다고 밝혔다.
분석 결과, 지위 경쟁이 강할수록 사교육 지출은 늘고 출산율은 낮아지며, 경쟁은 가구 간에 파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간 비교에서는 한국, 싱가포르, 칠레가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 사례로 꼽혔다. 한국의 경우 지위 경쟁 효과가 없었다면 평균 자녀 수가 28%(1970∼75년생 여성 출산 기준, 1.92명→2.45명) 많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팀은 “자녀 한 명에게 돈을 많이 쓰는 것(직접 투자)과 출산율 저하는 부모의 합리적 선택일 뿐, 그 자체로 사회적 비효율(시장 실패)이라 볼 수 없다는 기존 이론은 한계를 띠고 있다”며 “부모들이 자녀의 절대적 능력보다 남들과 비교한 상대적인 ‘지위 불안’에 집착하면서 비효율이 발생한다”며 이번 연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남들과 비교해 내 자녀가 뒤처지면 불행하다는 비교 심리가 강하면, “많이 낳아서 대충 키우기보다 한 명만 낳아서 ‘올인’하겠다는 선택을 유도한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학벌이나 성공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겹치면, 비교 심리가 그 불안감을 증폭시켜 출산율을 더 가파르게 추락시킨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저소득층이 소득 대비 사교육비를 더 많이 지출(1분위 8.4%, 5분위 5.1%)하는 것으로 분석된 대목도 눈에 띄었다. 이와 관련, 적절한 규제를 통해 고소득층의 사교육비가 줄어들면 지위 경쟁의 압박 강도가 낮아져 저소득층의 사교육비 지출도 덩달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원 심야교습 규제로 상위 15% 가구의 사교육비가 10% 감소하면 하위 50%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 비중(평균 6%)은 0.4∼0.9%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염 교수는 “지위 경쟁은 사회적으로 과도한 교육투자와 저출산을 초래하므로 정부 개입의 근거가 되며, 고소득층의 사교육비 지출에 대한 과세로 재원을 마련해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대학 입시 제도 개혁을 통해 서열 경쟁의 김을 빼주는 게 최적의 저출산 대책”이라고 밝혔다. 사교육 경쟁은 모두가 돈을 써도 대학 정원은 그대로여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시장 실패 사례라는 점에서 정부 개입의 필요성이 높고, 사교육을 억제하는 게 자녀의 실제 학업 성취를 해치지도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번 콘퍼런스는 ‘인구 고령화와 장수의 경제학’을 주제로 이날부터 이틀간 이어질 예정이다. 해외 출장 중인 신현송 한은 총재는 영상으로 전한 개회사를 통해 “인구구조는 강력한 힘이지만, 흔히 말하듯 ‘인구가 곧 운명’은 아니다”라며 “인구구조 변화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지만, 다가오는 것을 미리 볼 수 있고 그만큼 늦지 않게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