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불운에 울었던 비운의 천재 복서의 복싱 스토리

경남 전국체전 선발전 문임철 과 최재영(좌측).j
경남 전국체전 선발전 문임철 과 최재영(좌측).j

1989년은 용산공고에서 지도자로 입문 한 나의 복싱 원년(元年)이다. 이때 신입생으로 입학한 1973년생 복싱 고교생들이 풍년을 이룰 정도로 유난하게 대어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지인진(당곡고) 김승택ㆍ신은철(대전체고) 차관철(홍천고)ㆍ최요삼(용산공고) 등이 이 주인공이다.

야구로 눈을 돌리면 고교야구에서도 73년 신입생으로 입학한 박찬호(공주고)ㆍ임선동(휘문고)ㆍ조성민 (신일고)ㆍ손경수(경기고)ㆍ박재홍(광주일고)ㆍ염종석(부산고)등 대어급 투수들이 많이 탄생한 해가 바로 1973년이다.

당시를 복기(復期)해 보면 복싱계에서 베일에 가려진 흙 속에 진주 같은 복서 한명이 떠오른다. 1973년생인 경남체고 1학년 최재영이 주인공은 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사각의 링이 아닌 축구장이었다.

중학교 체육 시간에 축구 신동이라 불린 그의 발재간을 유심히 지켜본 체육 선생이 있었다. 1975년 제25회 학생선수권 (페더급) 우승자이자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3차 선발전 4강에 오른 유인봉(경남대) 교사였다.

1990년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국가대표로 선발된 최재영
1990년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국가대표로 선발된 최재영

그렇게 유인봉과 인연을 통해 복싱과 인연을 맺은 최재영은 1989년 경남체고에 특기생으로 진학한다.

당시 경남체고 복싱 지도자는 1983년 필자와 함께 청소년 대표로 활약한 왼손잡이 복서 김기원(동아대)이었다.

1학년 때부터 최재영은 축구선수 출신답게 현란한 스텝에 의한 전광석화처럼 터지는 카운터 펀치로 라이트급에서 2차례 8강에 진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90년 경남체고 2학년 최재영은 전국체전 1차 지역 선발전 결승에서 만난 복서는 거제 해성고 3학년 이강식이었다. 이강식은 유소년 시절부터 마라톤에 특화된 체력이 뛰어난 복서였다. 

1991년 MBC 최우수 신인왕 이강식
1991년 MBC 최우수 신인왕 이강식

이를 바탕으로 이강식은 당시 경남지역을 호령했다.

전년도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강식과 맞선 최재영은 180Cm 의 훤칠한 키에서 뿜어내는 날카로운 스트레이트로 맞대응 3회 판정승을 거두고 1차 선발전 우승을 차지한다.

패한 이강식은 72전 70승 2패의 아마 전적을 뒤로하고 1991년 11월 MBC 전국 프로 신인왕전에 출전 4연승(3KO)을 거두고 대망의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면서 최재영에 패한 아픔을 달랬다.

2차 선발전 상대는 문임철이었다.

문 임 철은 진주 중앙중 시절 현 대한 복싱연맹 박현교 심판위원장의 지도를 받은 복서로 훗날 1995년 제4회 서울컵 은메달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미들급에 국가대표로 선발된 중량급의 거목이었다.

이 대결에서 최재영은 군말 없는 판정승을 거두고 경남 대표로 선발되어 전국체전 본선에서 4강에 진출한다. 그러나 경기 전날 체중감량을 위해 로드웍을 하는 도중 그만 달려오는 택시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한다. 

결국 그는 링에서지 못하고 깁스를 한 채 동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올라 눈물을 흘려야 했다.

1991년 2월 최재영은 제14회 인도네시아 대통령 배에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8강에서 강력한 태국의 잠농을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시련은 또다시 그를 방문한다. 졸업반인 1991년 5월 체육부 장관기 대회 결승에서 서울체고 선수와 경기 도중 상대를 가격하다 그만 오른손에 부상을 당한다.

우측 손목 중추 골 습관성 골절로 판명되어 훗날 이 부상으로 군 면제 판정까지 받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런 악조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최재영은 그는 악바리 근성을 발휘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92년 경남대학에 진학한 최재영은 부상 여파로 1년간 공배기를 가진 후 1993년 3체급에 걸쳐 국가대표에 발탁된 부산 대표 이훈(동국대)과 대통령 배 대회에서 맞대결한다.

이 경기에서 1.2회 날카로운 스트레이트로 이훈을 상대로 2차례 녹다운을 탈취했지만 안타깝게도 손 부상이 재발 2점 차로 역전패를 당했다. 

경남대 민병용 감독(중앙) 선수시절
경남대 민병용 감독(중앙) 선수시절

1995년에 복싱 인생에서 가장 잔혹한 흑역사가 펼쳐진다. 대전에서 열린 대통령 배 라이트 미들급 결승에서 경남 대표로 출전한 최재영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국가대표 임정빈과 한판승부를 벌인다.

그러나 전날 밤 경남대 복싱을 담당한 19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동양 챔피언 출신 민병용이 메달권에서 탈락한 선수 2명의 상흔(傷痕)을 달래기 위해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중 일반인과 시비가 붙어 그만 예기치 아니하게 폭행 사건을 일으킨다.

당시 민병용의 폭행 사건은 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어 일파만파로 퍼졌다.

이 사건으로 다음날 결승전을 치러야 할 최재영은 상황을 파악하고 사태를 수습하느라 밤새 경찰서를 오가면서 한숨도 자질 못했다. 한마디로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다음날 결승전에서 최재영은 나 홀로 링에 올라서야 했다. 1회 최재영은 임정빈에게 오픈성으로 레프트 훅을 맞는다. 고막이 터지는 반칙성 타격이었다.

하지만 주심은 묵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재영에겐 항의할 세컨도 없었다. 결국 이훈 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2점 차의 패하면서 은메달에 머문다.

그해 6월 제4회 서울컵 대회가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그때 최재영은 그간의 경력이 인정되어 웰터급 국가대표 출전이 내정된다.

하지만 막판에 다른 선수로 교체되는 수난을 당한다. 축구에 비견하자면 고려대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남대학을 졸업한 1996년 최재영은 이번엔 복싱을 접고 민병용의 사퇴로 공백이 된 경남대학 복싱 감독을 맡는다.

그러나 1997년 경남대학 복싱부는 전격 해체되는 비운을 맞는다. 경남대학을 떠나면서 최재영은 스승이자 선배인 민 병용을 회고하면서 그분은 정의감 넘치고 의협심 강한 스승이라고 회고했다. 이후 복싱계를 떠났어도 그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는 최재영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는 최재영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KBC 복싱 방송해설을 담당한 최재영은 2000년 김옥태 회장 휘하에서 복싱협회 사무국의 업무를 총괄하면서 깔끔한 일 처리로 업무능력을 인정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남 출신 최재영이 대한 복싱협회 집행부로 활동할 때 이후 심판 판정에 불이익을 받던 경남복싱은 모처럼 반짝하고 도약을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2005년 중국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금메달(이옥성)과 올림픽 2회 연속 메달(김정주)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혼신(魂神)의 열정으로 경남복싱이 거듭 태어나는 발판을 구축한 지난날 최재영의 숨은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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