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AI, 주권의 최소 요건은 무엇인가[투데이窓/임진]

미국정부, 미토스5·페이블5 수출통제

위기 때 국가기능 마비로 이어질 우려

국방금융 등 핵심영역 통제권 확보해야

최근 인공지능을 둘러싼 경쟁은 성능을 넘어 주권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미국 정부의 앤트로픽 최상위급 AI 모델인 미토스 5와 페이블 5에 대한 수출통제다. 2026년 6월 미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앤트로픽은 해당 서비스를 즉각 중단했다. 비록 통제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끝났지만 해외 이용자들은 미국 정부의 일방적 결정만으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소버린 AI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평소에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더라도 위기 상황에서 상대국 정부가 킬 스위치를 작동시켜 접근을 일방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면, 이를 과연 자국의 AI 역량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검색과 문서작성 도구를 넘어 국방, 금융, 행정, 산업의 핵심 기반으로 자리 잡는 상황이 되었을 때 접근권의 중단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국가 기능의 차질이나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연합이 디지털주권 정책을 강화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유럽 간 갈등은 관세와 통상을 넘어 기술의 개발·통제권을 누가 보유할 것인가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양국 정부는 AI를 규제하거나 보조하는 단계를 넘어 AI 기업과 인프라에 직접 참여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략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정부가 첨단 AI 기업의 주주가 되어 소유와 지배구조에 관여하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변화다. AI 기업을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 아니라 국가 핵심 인프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버린 AI의 최소 요건은 무엇인가. 흔히 자국 데이터와 인프라를 통제하고 자국 언어와 문화에 맞는 모델을 보유하는 것을 AI 주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자체 초거대 모델을 보유해야 하는지, 해외 모델을 활용하면서 데이터와 인프라만 통제해도 충분한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반도체·클라우드·데이터센터·데이터·모델 가운데 어디까지 국내에서 확보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국내 논의가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집중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국내에서 개발한 모델이라도 첨단 연산칩, 데이터센터 인프라, 클라우드 플랫폼을 해외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면 위기 시 안정적인 운영이 어렵다. 반대로 해외 모델이라도 국내에서 운영되고, 중요 데이터가 국내 법률의 적용을 받으며, 필요할 때 다른 모델로 전환할 수 있다면 일정 수준의 주권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독자 모델은 소버린 AI의 중요한 구성요소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소버린 AI의 최소 요건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외국 정부의 수출통제나 기업의 서비스 중단에도 국가의 핵심 AI 기능을 일정 기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데이터의 관리 전반과 AI 모델의 윤리적, 법적 책임이 국내 법률과 정책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셋째, 외국의 기술지원 없이도 시스템을 운영하고, 필요하면 다른 모델이나 인프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AI 생태계 전반을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반드시 바람직하지도 않다. 성능이 뒤처지는 독자 AI의 사용을 국내 시장에 강제할 경우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제약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정책의 출발점은 국산화가 아니라 핵심 영역과 비핵심 영역을 구분하는 데 있어야 한다. 국방, 금융, 행정과 같은 핵심 영역에서는 데이터와 시스템 운영권을 국내에서 통제하고, 위기 상황에 대비한 최소한의 자체 컴퓨팅 역량과 대체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반면 상업적·범용적 활용 영역에서는 글로벌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특정 공급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필요할 때 다른 모델이나 인프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 영역에는 주권과 통제력을 확보하고, 비핵심 영역에는 개방성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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