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박양수]기술 보호에서 기술거래 활성화로

박양수 대한상공회의소경제연구원장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노동투입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과 혁신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이 필수적이다. 최근 정부와 기업이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산업 육성에 정책 역량과 투자를 집중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혁신의 출발점은 대개 중소·벤처기업이다. 대규모 조직보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 바이오, 핀테크, 기후기술과 같은 첨단산업은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 실험과 도전이 중요하다. 이들 분야는 기술기업이 혁신을 주도하고, 대기업은 자본과 네트워크, 글로벌 사업화 역량을 활용해 이를 확산시키는 분업구조가 효과적이다.

그간 우리 경제에서는 기업이 개발한 기술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기술탈취 우려로 기술협력 자체를 주저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정부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 K-디스커버리 도입 등을 통해 기술보호 장치를 강화해 온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규제 강화만으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정당한 보상을 받고,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적정한 비용을 지불하며, 투자자는 혁신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즉 기술이 기업의 핵심 자산으로 인정받고 거래될 수 있는 시장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우선 AI와 바이오 분야처럼 기술 변화가 빠른 산업에서는 특허심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조기에 권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특허 출원과 기업 간 거래 과정에서 기술자료의 제출과 활용이 투명하게 관리되도록 제도를 고도화해 지식재산권 보호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술가치 평가체계 발전도 시급한 과제다. 일반 기업은 과거 실적과 현금흐름, 유사기업 비교를 통해 가치를 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기업은 매출이나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보유 기술이 독창적이라 비교 기업을 찾기도 어려우며. 사업화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도 크다. 기술의 혁신성, 시장성, 사업화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는 정교한 평가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혁신 생태계의 완성을 위해서는 회수시장 활성화도 중요하다. 대표적인 회수 수단은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M&A를 통해 신사업 진출, 기술역량 강화, AI 전환 가속화라는 효과를 얻고, 기술기업은 투자금을 회수해 새로운 혁신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기업형벤처캐피털(CVC)을 통한 전략적 투자와 협력 확대 역시 중요한 연결고리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는 기술기업 M&A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AI 투자 확대와 함께 기술기업 중심의 M&A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 역시 기술보호를 넘어 기술거래와 투자, M&A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도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세제·금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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