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를 둘러싸고 있는 맑은 액체인 뇌척수액은 뇌 속에 쌓인 노폐물을 씻어내는 일을 하는데, 뇌척수액과 노폐물은 뇌 속 림프관을 통해 목과 턱 주변 림프샘으로 배출된다. ‘뇌 청소’ 분야를 천착해온 국내 연구진이 밝혀낸 경로다. 연구진은 이번에 뇌척수액이 어떤 경로로 뇌를 둘러싼 지주막을 통과해 바깥에 있는 림프관으로 들어가는지도 밝혀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 연구단장(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이 이끄는 연구팀이 동물 실험을 통해 뇌척수액이 뇌를 감싼 뇌막을 통과해 뇌막 림프관으로 흡수·배출되는 핵심 경로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셀’에 논문으로 게재됐으며,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 해부학교실의 도널드 맥도널드 명예교수가 공동 주저자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자원센터 연구진도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연구팀은 2019년과 2024년 뇌척수액이 뇌 하부 뇌막 림프관 및 비인두 림프관 망을 거쳐 목 림프샘으로 배출되며, 노화가 진행되면 이 경로가 퇴화한다는 사실을 규명하는 등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해왔다. 지난해에는 눈과 코 주위 등 얼굴 피부 아래의 림프관을 통해서도 노폐물이 배출되며, 여기에 미세한 기계적 자극을 가하면 배출을 촉진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다만 뇌를 둘러싼 3겹의 뇌막 가운데 두번째 막인 지주막 아래에 있는 뇌척수액이 어떻게 가장 바깥쪽인 경막에 있는 뇌막 림프관으로 유입될 수 있는지는 그간 밝혀지지 않았다. 뇌와 척수를 보호하는 뇌막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연막, 지주막, 경막 등 3겹으로 되어 있는데, 뇌척수액은 지주막과 연막 사이에 고여있다. 노폐물과 면역세포 등이 오가는 통로인 림프관은 오랫동안 뇌에는 없다고 여겨지다가 나중에야 그 존재가 드러났는데, 뇌막 림프관은 뇌막의 가장 바깥쪽인 경막에 위치한다.


연구팀은 배출 경로에 있는 코와 뇌의 경계에 주목하고, 형광물질을 보여주는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후각망울(후각 정보를 1차 처리하는 뇌 앞쪽 구조물)과 사골판(뇌와 비강 사이 얇은 뼈) 주변을 정밀하게 살폈다. 먼저 이 부위에 있는 뇌막 림프관이 코 안에 있는 림프관과 직접 연결된 것을 확인했다. 또 형광 추적물질을 지주막하강에 주입해, 뇌척수액이 후각망울 주변 지주막을 통과해 뇌막 림프관으로 유입되고, 이후 연결된 림프관을 따라 배출되는 전체 경로를 확인했다.
후각망울 주변 지주막이 어떤 방식으로 뇌척수액을 통과시키는지도 밝혔다. 연속적인 막 구조를 이루고 있는 다른 지주막 부위와 달리, 후각망울 주변 지주막에는 직경 4.5㎛ 크기의 미세한 구멍들이 있어 뇌척수액을 통과시킬 수 있던 것이다. 연구팀은 이 구조에 ‘지주막 소창’(Arachnoid fenestration)이라 이름 붙였다.
노화 생쥐와 젊은 생쥐를 비교 분석해보니, 노화 진행에 따라 지주막 소창의 크기와 개수는 50~60% 감소하고, 뇌막 림프관과 림프관이 통과하는 구멍의 면적은 각각 58%, 6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화 생쥐는 배출되는 뇌척수액의 양도 줄었다. 노화에 따라 뇌청소 효율이 떨어지는 구체적인 원리를 밝혀낸 것이다. 뇌에서 노폐물을 제거하는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아밀로이드-베타 같은 신경독성 단백질이 뇌에 쌓여 인지기능 저하와 알츠하이머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이 생길 수 있다.

연구팀이 노화 생쥐의 비강에 림프관 생성을 촉진하는 유전자(VEGF-C)를 발현하는 바이러스(AAV9)를 투여했더니, 지주막 소창의 크기는 회복되지 않았지만 후각망울 주변의 뇌막 림프관의 크기는 2~3배 증가했다. 림프절로 배출되는 뇌척수액의 양도 젊은 생쥐 수준으로 회복됐다. 연구팀은 이는 비강을 통한 국소 유전자 치료만으로도 노화로 저하된 뇌청소 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을 제시한 결과로 풀이된다. 연구를 주도한 홍선표 연구위원은 “영장류에서도 동일한 지주막 소창 구조를 확인함으로써 사람의 뇌 청소 기전을 밝힐 핵심 단서를 확보했다. 앞으로 인체 조직을 이용한 연구로 확장하고,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