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만 타면 모든 시선이 나한테 집중돼요. 그런데 나만 바라보던 수많은 사람들이 딱 한순간, 저를 안 볼 때가 있어요.”
망막색소상피변성증으로 30살이 다 되어 시각을 잃은 중도 중증 시각장애인인 장근영씨가 잠시 뜸을 들은 뒤 말을 이었다. “지하철에서 제 앞에 자리가 비잖아요? 그럼 단 한 사람도 ‘앞에 빈자리 났다’고 말을 안 해줘요. 그러고는 지가 앉아요. 이 눈도 보이는 것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모두예술극장 연습실에서는 장씨를 비롯한 장애인들의 스탠드업 코미디 연습이 한창이었다. 이들은 서울 성수동 카인드서울에서 오는 30일 열리는 ‘스탠드 역 코미디: 감각을 뒤집는 웃음’(스탠드역 코미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 5명, 비장애인 2명이 오르는 공연은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의 결과물로 ‘장애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스탠드업 코미디를 표방한다. 비장애인 중심인 스탠드업 코미디 문법을 뒤집자는 의미로 ‘바꿀 역’ 자를 넣어 스탠드 역 코미디로 공연 제목을 지었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코미디언 한명이 무대에 올라 특별한 상황 설정이나 소품 없이 오로지 말로만 관객을 웃기는 장르로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각자 지닌 다양한 정체성을 웃음 소재로 삼는 것이 묘미다. 장애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이 스탠드 역 코미디 공연으로 이어졌다. 공연 기획자인 연극배우 이성수씨는 “국내외에서 점점 붐을 일으키는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에서 장애인인 우리도 빠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워크숍을 진행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정성은씨는 “장애인 코미디언들의 찰진 이야기에 비장애인 코미디언들이 긴장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장애에 대한 ‘비하도, 미화도 없는’ 이들 농담 속에서 관객은 고정관념이 깨지는 통쾌함을 느낀다. 키 110센티미터 저신장 장애인 전연주씨는 ‘장애인은 착하고 순진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희화화한다. 전씨는 자신을 거쳐 간 남자친구들을 ‘수발놈’이라고 부른다며 코미디를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저를 보면 ‘아이고, 시집 다 갔다, 남자는 만나겠냐’고 하는데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거쳐 간 남자들이 셀 수 없이 많은 데다가, 제 성격이 워낙 못돼 처먹어서 ‘수발든다’는 생각 없이는 만날 수도 없거든요.” 전씨는 장애 여성이 연애 상대를 어떻게 ‘길들이는지’를 무대에서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장애 덕에 겪은 일상의 웃음 소재도 빼놓을 수 없다. 지체장애인 정지영씨도 마이크를 쥐고 농담을 시작했다. “장애인은 조금 과하고 박력 넘치는 친절을 받을 때가 있어요. 어느 날 지하철역에서 나왔는데 웬 ‘깍두기 형님’ 같은 분들이 갑자기 다가와서는 제가 탄 휠체어를 번쩍 들고 옮겨 주는 거예요. 그런데 방향이 제가 열심히 온 역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깍두기 형님이 휠체어를 내리며 ‘조심히 가십시오’ 하자마자 제가 용기 내서 말했어요…. ‘감사합니다!’”
공연이 전하고 싶은 건 일단은 웃음, 그와 함께 장애에 대한 친숙함이다. 이성수씨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것만큼이나 미화하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왜곡과 차별을 낳을 수 있다”며 “자기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통해 장애 당사자들은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보고, 비장애인들은 그런 이들과 접점을 늘려 친숙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