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형근 | 동네 사회학자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스페인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컵을 안았다. 결승전의 서사도 흥미로웠다. 스무살 리오넬 메시가 유니세프 행사에서 씻겨준 아기 라민 야말이 자라서 결승전 상대가 됐다니 마치 동화 같다. 둘은 축구클럽(FC) 바르셀로나로도 엮인다. 메시는 이 클럽의 전설이고 야말은 현재이자 미래다.
2010년 여름 바르셀로나 여행 중에 그 홈구장 캄노우 투어를 했다. 관중석과 라커룸, 잔디도 밟았다. 마지막은 영광스러운 팀 역사를 영상으로 보며 응원가를 듣는 순서였다. 벅찬 감동에 문을 나서면 기념품 상점이니 상술도 최고였다.
물론 상술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경기장 입구에는 ‘클럽 그 이상의 클럽’이라는 슬로건 아래 카탈루냐 정체성, 보편성, 사회 참여, 민주주의라는 클럽의 지향점이 적혀 있었다. 클럽은 축구를 넘어 프랑코 독재에 저항하던 지역의 구심점이었다. 20여만명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이기도 하다. 팀의 주축은 유소년 시스템 라 마시아 출신이다. 축구가 자본의 논리에 잠식된 오늘날 그나마 ‘진정성’이 남은 곳이랄까.
‘그깟 공놀이’라지만 축구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빈민가 골목에서 학교 운동장을 거쳐 각급 프로리그와 월드컵까지 축구 없는 곳이 없다. 월드컵 결승전에는 20억명이 몰입한다. 경이로운 일이다.
‘털 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저서 ‘축구 종족’에서 이 열광의 원인을 찾는다. 먼저 축구는 인간에게 잠재한 사냥 욕망을 대리 만족시킨다. 전략, 전술을 세우고, 골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사냥을 꼭 닮았다. 축구는 유사 전쟁이다. 사냥이라면 포획량(골 수)만 따지겠지만 전쟁이니 승패가 중요하다. 축구는 지위 시스템이다. 승부에 따라 팀, 지역, 민족, 국가 간에 서열을 짓고 다툰다. 축구는 유사 종교다. 경기장은 예배당이며 스타는 숭배된다. 그래서일까, 일부 좌파 이론가에게 축구는 인민의 아편이다. 불만을 분출시켜 체제 전복을 막는 장치라는 것이다. 축구는 산업이다. 선수는 연봉을, 구단주, 광고주, 미디어, 피파(FIFA·국제축구연맹)는 이윤을 좇는다. 끝으로 축구는 극적인 공연예술이다. 스타들의 기교는 예술의 경지에 이르고 팬덤의 열광이 무대를 완성한다. 이처럼 인간 본연의 복잡한 욕망이 발현되는 행동 양식이기에 축구에 열광한다는 분석이다.
경기 스타일 차이에 대한 정치적 비유도 있다. 1978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시킨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은 우익 축구와 좌익 축구를 구분했다. 우익 축구는 승리 지상주의 축구다. 거친 몸싸움, 강한 규율, 감독에 대한 절대복종을 강조한다. 반면 좌익 축구는 민중에게 행복을 주는 축구를 지향한다. 체력보다 기술, 규율보다 자유, 희생보다 자기표현을 앞세운다. 우익 축구는 승리에 집착할 뿐 공을 다루고 패스를 연결하는 과정의 기쁨을 모른다. 과정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좌익 축구의 요체라고 그는 말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이다. 정작 옛 사회주의권의 대표팀들은 승리 지상주의의 우익 축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근대 축구는 19세기 잉글랜드에서 엘리트 신사 계급의 스포츠로 등장했다. 이들이 아마추어리즘을 고수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돈내기 축구를 했다. 프로화 과정에서 축구는 노동자 계급 남성의 문화로 성장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웨스트햄 등이 노동자팀에서 유래했다. 역사가 에릭 홉스봄의 말처럼 축구는 “프롤레타리아의 세속 종교”가 되었다. 국가대표팀의 시대가 열리자 축구는 분열된 사회집단을 국민이라는 “상상된 공동체”로 통합하는 장치가 되었다. 축구 속에서 국민과 노동자가 통합과 긴장의 이중관계를 형성했다. 글로벌 산업이 되기 전 1970~80년대까지는 최상위 리그라도 일부 스타 외 선수는 지역 출신이었고, 평균 연봉도 노동자의 2~6배 정도였다(지금 이피엘(EPL)은 100배에 육박한다). 노동자들은 축구장에서 동네의 영웅에게 환호하며 마초적 ‘저항성’을 뿜어냈다.
제1세계에서 그 거친 ‘낭만’의 시대는 저물었다. 1990년대 이후 선수 이적이 자유로워지고 거대 자본이 유입되면서 축구는 무한경쟁 시장이 됐다. 다국적 선수단과 글로벌 팬덤이 부상했다. 이 시스템 속에서 내가 바르셀로나의 팬이 됐고, 이 시스템 속에서 바르셀로나는 변질됐다. 유니폼 상업 스폰서를 거부하던 전통을 버렸고, 거금을 들여 다른 팀의 스타 선수를 이적시킨다. 라 마시아는 세계 각지의 어린 재능을 선점한다. 기업에 명명권을 팔아 구장도 최신식으로 증축한다. 아름다운 과정을 중시하던 좌익 축구의 신봉자들도 승리 앞에서는 원칙을 접는다. 자본의 힘이다.
자본에 팔려 간 축구에 비즈니스 이상의 무엇이 남았을까? 이 골목 저 운동장에서, 3부와 4부 리그에서, 서구 바깥에서 축구는 여전히 뜨겁다. 아니, 중심에서도 치열하다. 준결승전 승리 후 메시가 경제난에 고통받는 아르헨티나인들에게 위로를 보내자, 극우 성향 대통령이 축구 선수가 경제를 알겠느냐고 받아쳤다. 야말은 지난 5월 리그 우승 퍼레이드 중에 팬들이 건넨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어 화제가 됐다.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이 가자의 잔해 위에 그 장면을 벽화로 그려 화답했다. 전쟁으로 잃은 다리 대신 목발을 짚고 뛰는 축구단 ‘가자 알 이라다’는 감사를 전하며 스페인의 우승을 빌었다. 그 바람이 이뤄졌다. 이런 이야기가 축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이런 이야기가 없으면 축구는 또 무엇일까?
오래전 대표팀 경기를 보러 상암구장(서울월드컵경기장)에 갔을 때였다. 옆줄에 고 백기완 선생이 앉아 있었다. 쌀쌀한 밤이었다. 따뜻한 차가 담긴 보온병을 건넸더니 고맙다며 받으셨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어 월남했다던 선생은 가난 탓에 학교를 못 갔고 축구 선수도 못 됐다. 대신 거꾸로 된 세상을 걷어차 바로 엎는 일을 평생 계속했다. 선생은 그것을 당신의 축구라고 불렀다. 축구가 그렇듯 선생의 삶이라고 모순이 없었을까. 다만 멈출 수 없기에 평생 나아갔을 것이다.
비즈니스의 셈법은 냉혹해도 축구 속에는 기어코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다. 모든 꿈은 결국 세상에 길들겠지만, 어떤 꿈도 완전히 길들지는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박차고 달리는 이들이 있어서 힘을 얻는다. 월드컵이 끝날 즈음에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