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몸에서 특정한 유전자가 과도하게 발현되면 대사질환, 알츠하이머 같은 난치성 질환이 발병한다. 유전자와 단백질 사이의 매개체인 리보핵산(RNA)을 직접 조절하는 ‘RNA 치료제’는 이를 치료할 유력한 수단으로 꼽히는데, 국내 연구진이 마이크로RNA(miRNA)가 유전자 발현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그 구체적인 원리를 처음으로 규명했다.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의 김빛내리 단장과 서울대 생명과학부 노성훈 교수 공동 연구진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단백질 ‘아고넛’(Argonaute)의 활성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miRNA는 약 22개의 뉴클레오타이드(DNA·RNA 등 핵산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체)로 이뤄진 작은 RNA로, 직접 단백질을 만들진 않으나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전령RNA(mRNA)와 결합해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선택적으로 억제한다. miRNA는 아고넛과 결합해 ‘단백질-RNA 복합체’(RISC)를 형성해야만 실제로 세포 내에서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할 수 있다. 제거 대상에 대한 정보를 담은 miRNA가 아고넛과 결합하면, 아고넛이 표적이 되는 전령RNA를 찾아가 분해하는 식이다. 다만 아고넛이 miRNA를 받아들이는 구체적인 과정은 그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세포 내 아고넛은 대부분 이미 miRNA와 결합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직전 단계를 포착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번에 연구진은 세포 안에서 다른 단백질에 붙어서 정상적으로 3차원 구조를 갖추도록 도와주는 단백질인 ‘샤페론’이 아고넛의 구조 형성을 돕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뜻밖에도 아고넛과 샤페론이 형성한 복합체가 이미 세포 안에 많이 있다는 걸 발견한 데에서 찾아낸 새로운 접근 방법이다. 연구진이 이 ‘아고넛 성숙 복합체’(AMC)를 세포에서 직접 분리·정제해 관찰했더니, 샤페론이 아고넛을 ‘열린’ 형태로 붙잡아 miRNA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주고 miRNA가 결합한 뒤엔 떨어져 나가, 그 결과 아고넛이 유전자를 조절할 수 있는 ‘닫힌’ 형태로 완성되는 것이 확인됐다.
물건(miRNA)이 없더라도 빈 상자(아고넛)는 미리 접어놓을 수 있을 거란 게 기존의 통념이었는데, 연구진은 이와 달리 물건이 있어야 상자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확인했다. “실제로는 물건을 골격으로 삼아야 비로소 상자를 접을 수 있었던 셈으로, 단백질의 완성은 RNA의 탑재와 맞물려 일어난다”는 것이다. miRNA는 단순히 아고넛과 결합하는 대상이 아니라, 아고넛이 올바른 구조를 갖추도록 돕는 핵심 인자란 얘기다.


이번 연구 성과는 특정 유전자의 활동을 선택적으로 차단해 질병 원인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작은간섭RNA(siRNA·Small Interfering RNA) 치료제 설계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임상에서 사용되는 siRNA 치료제는 체내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변형 과정을 수천 가지 조합을 일일이 합성하고 검증하는 방식에 의존해 왔다. 그런데 아고넛 결합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고 재현할 수 있게 되어, 정밀한 치료제 설계가 가능해진 것이다. 김빛내리 연구단장은 “그동안 시행착오에 의존하던 RNA 치료제 설계에 분자적·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라며 “이를 이용해 향후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siRNA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