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하에서 차로 2시간 거리
시골 소도시 여행으로 힐링
르네상스식 집들 즐비한 텔치
양조장서 못 잊을 맥주 맛 경험
도시가 강퍅해질수록 시골이 궁금해진다. 시골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녹음 우거진 숲과 낭랑한 새소리, 뺨을 스치는 달곰한 바람이 떠오른다. 최근 소도시 여행이 인기인데, 소도시야말로 시골이다. 체코에서도 시골 여행이 가능하다.
지난 4월20일(현지시각)부터 이틀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체코 관광 대전 ‘체코 트래블 트레이드 데이’ 기자간담회에서 테레자 호프마노바 체코관광청 상품기획·지역협력부 부서장은 프라하 이외 지역의 관광 자원과 매력을 강조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한국 관광객이 최근 남모라비아 등 지역에 부쩍 관심이 커졌다고도 했다. 그는 “한국인을 위한 다양한 지역 관광 활성화 전략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체코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체코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27만3343명으로, 국가별 방문객 중 경제적 파급 효과 기준 7위를 기록했다. 아시아권에선 1위다.
호프마노바가 한국인에게 추천하는 지역은 비소치나주다. 한국과 인연이 있다. 2029년께 비소치나주 두코바니에 한국 기술로 원전이 완공될 예정이다. 지난해 한국-체코 간 신규 원자로 건설 프로젝트 계약이 체결됐다.




체코 중동부에 위치한 비소치나주는 구릉지대와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유네스코 지정 유산도 많다. 여기에 숙박시설로 변신한 성 등은 웰니스 여행지를 자처한다. 시골답게 농업 관광도 활성화됐다. 프라하에서 차로 약 2시간이면 도착한다. 수도는 이흘라바다. 지난 4월17일부터 사흘간 이 지역에서 세가지 맛의 여행을 했다.
첫번째는 중세 미학의 향취가 가득한 텔치의 역사 여행이다. 텔치는 르네상스 시대 성곽과 주택, 광장 등이 잘 보존된 소도시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체코에는 유네스코 지정 유산이 16곳이나 된다. 프라하, 체스키크룸로프, 쿠트나호라 같은 유적지도 있지만,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디자인한 ‘빌라 투겐트하트’ 같은 건축물도 있다.
흔히 이르길 ‘잔인한 4월’은 이곳에서 ‘나른한 4월’이 된다. 텔치 어디를 가도 시간을 느리게 보내는 현지인을 만나게 된다. 강가나 언덕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이가 많다. 텔치 여행의 백미는 자하리아시 광장이다. 아치형 회랑으로 연결된 파스텔톤의 르네상스식 가옥들이 있다. 한국 여행객들의 인스타그램 성지인 포르투갈의 줄무늬마을 코스타노바를 연상하게 한다. 중세시대 이 지역 통치자는 이탈리아 건축가들과 숙련공들을 초청해 도시를 짓게 했다. 이탈리아 장인들은 도시를 빠르게 변모시켰다. 더구나 텔치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현지인이 들려준 얘기는 흥미롭다. “이 집은 제빵사 미할의 집이었어요. 그는 시장이었죠. 성주와도 관계가 좋았답니다. 이탈리아에 갔다가 르네상스 양식에 반해 그곳 장인들을 데려와 집들을 짓게 했어요. 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집들 말이죠. 16세기 얘기죠.” 그는 이후 벌어진 잔혹사도 얘기했다. “미할의 집이 다 완성된 뒤 예수회가 들어왔는데, 그들은 이 양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장식들을 제거하게 했죠. 다행히 3㎝ 두께의 회반죽을 덮은 장식은 살아남았어요. 1956년 복원됐답니다.” 광장 건물 모두가 르네상스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하는 고딕 양식인 경우가 많다. 일부는 바로크 양식이다. 지금 광장의 가옥 대부분은 레스토랑, 카페, 소품 가게 등으로 운영된다.
미할의 집을 떠나 대학 건물, 교회, 옛 양조장 등을 차례로 둘러봤다. 중세시대 수도사가 된 듯했다. 지친 다리를 언덕에 내려놨다.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짙푸른 하늘이 그림물감 같았다. 쏟아질 것처럼 눈동자 안으로 들어왔다. 낮잠도 살짝 청해봤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요즘 텔치가 한국인 여행객 에스엔에스(SNS)에 부쩍 자주 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싶었다.

두번째는 지상에 강림한 맥주의 신이 제공하는 맛을 경험하는 여행이다. 훔폴레츠에는 1597년 세워진 베르나르트 양조장이 있다. 설립자 스타니슬라프 베르나르트는 16세기에 지어진 건물을 1991년 인수해 양조장을 열었다. 그는 체코 최초로 ‘마이크로 브루어리’(소규모 독립 양조장) 협회를 설립하는 등 지역 맥주의 전통 방식 유지에 힘쓴 이다. 애그리투어리즘을 실천하는 양조 장인이기도 하다. 요즘 세계 관광 전문가가 주목하는 여행에 애그리투어리즘이 있다. 농업에 관광을 접목한 신개념이다. 재배, 수확 등 농업 과정을 체험하면서 휴식하는 여행 콘텐츠다.
4월19일 양조장 1층에 도착했다. 맥주 마니아라면 환호할 만한 맥주잔이 즐비했다. 맥주잔이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온도가 생명인 맥주는 잔 두께가 중요하다. 양조장 관계자가 말했다. “우리 맥주는 우리가 만든 효모로 만들어요. 우리 효모를 공급받는 양조장도 많아요. 요즘 무알코올 맥주도 인기인데, 우리가 만든 자두맛 무알코올 맥주를 찾는 이가 많아요. 운전자들이죠. 여름 체코 음식은 단 음료와는 안 어울립니다. 대안으로 무알코올 맥주가 떠오르고 있죠. 무알코올 맥주 생산을 포기한 양조장도 많은데, 우리는 잘하고 있어요. 물론 라거 맥주 맛도 최고입니다.”


이곳 맥주 맛의 진가는 ‘탭스터 아카데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맥주는 발효 방식에 따라 하면발효 라거, 상면발효 에일, 자연발효 람빅으로 나뉜다. 라거는 가볍고 청량한 맛이 특징이다. 에일은 묵직하고 진하다. 람빅은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체코는 라거의 성지다. 체코의 플젠은 라거 종류 중 하나로 전세계 마니아들이 추앙하는 필스너의 탄생지다. ‘필스너 우르켈’이 대표 브랜드다. 베르나르트 양조장도 필스너에 버금가는 라거를 생산하는 명가다.
‘탭스터 아카데미’ 체험장에 도착하자 양조자 즈비네크가 있었다. 마블 히어로 토르가 체코로 망명했나 싶었다. 190㎝ 넘는 키에 성인 장딴지보다 더 굵은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섬세한 맥주의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오산이었다. 그는 맥주의 신이었다. 그가 맥주 따르기 신공을 펼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내민 첫 잔은 거품이 4분의 1 정도 찬 맥주였다. 황금색 맥주 위에 솜털보다 더 하얀 거품이 올라가 있었다. 다음엔 거품 없는 맥주를 들이밀었다. 처음 준 맥주와 맛이 달랐다. 세번째 맥주는 거품이 4분의 3을 차지했다. 그의 신공은 멈추지 않았다. 그다음엔 거품만 있는 맥주를 줬다. 이어 노란 맥주에 흑맥주를 넣고 거품을 올린 잔도 선보였다. 5가지 맥주 맛이 미세하게 모두 달랐는데, 놀라운 건 모두 같은 맥주란 점이었다. 프랑스인들이 미식에 진심이라면, 체코인들은 맥주에 진심이다. 즈비네크가 선보인 생맥주엔 각각의 이름이 있다. 흘라딘카(4분의 1 거품), 초흐탄(거품 없음), 슈니트(4분의 3 거품), 믈리코(거품만 있음), 르제자네(흑맥주 결합)다.


이날 경험한 맥주 맛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체코 맥주가 맛있는 데는 재료의 영향이 크다. 맥주 맛의 근간인 홉의 생산지로는 체코 내 세곳이 유명하다. 자테츠, 우스티주, 트르시체다. 청정 자연이 보듬은 질 좋은 홉 생산지다. 특히 자테츠에서 생산되는 홉은 맥주 강국이라 자부하는 독일인들도 ‘사츠 홉’이라 부르며 찾는 재료다.
베르나르트 레스토랑에선 맥주와 음식의 페어링을 경험할 수 있다. 양조장은 누리집(bernard.cz)을 통해 투어 예약을 할 수 있다. 이메일(prohlidka@bernard.cz)로 연락하면 된다. 프라하에선 다양한 맥주 투어를 체험 여행 플랫폼을 통해 선보인다. 프라하 맥주 투어, 맥주 스파 체험, 플젠 필스너 투어 등 다양하다.






세번째는 웰니스(웰빙+피트니스, 몸과 마음, 사회적 관계가 건강한 상태) 관광지로 탈바꿈한 공간 여행이다. 샤토 헤랄레츠는 고풍스러운 공간 안에 다양한 형태의 스파를 운영한다. 스바타 카테르지나 리조트는 심신이 지친 이가 장기간 머물며 치유하기 더없이 좋은 숙박 공간이다. 해발 730m 지역의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현지인들은 체코에서 공기가 가장 깨끗한 곳이라고 말한다. 시설은 최고급인데 가격은 한국 고급 호텔 기준 반값에도 못 미친다. 이 리조트는 16세기에 아픈 이들이 ‘좋은 물’(도브라보다)이라고 부르며 찾는 명소였다. 지금 리조트는 친환경 관점을 유지하며 운영한다. 인도 출신 명상 전문가가 진행하는 치유 스트레칭, 이른 아침 노르딕 워킹 산책, 요가, 숲속 명상, 승마 체험 등 다양한 웰니스 프로그램이 있다. 판스키드부르텔치는 과거 귀족 농장을 개조한 복합스포츠센터다. 클라이밍, 전기자전거 텔치 투어 등을 할 수 있다. 호텔 자메크트르제슈티는 체코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휴식하며 영감을 얻은 곳이다. 울창한 숲과 연못을 보유한 이곳은 과거 성이었다. 카프카의 작품 ‘시골의사’와 ‘성’의 배경지다. 산림욕, 요가, 체코식 바비큐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비소치나(체코)/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