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가 만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한 리처드 도킨스의 논쟁적인 저작 ‘만들어진 신’, 대기업이 주도하는 식품 산업의 위험성을 폭로한 ‘패스트푸드의 제국’은 모두 미국의 유명 출판 편집자 에이먼 돌런의 손을 거쳤다. 종교와 자본이라는 거대 권력의 이면을 파헤친 돌런은 또 다른 가짜 신화에 도전하려고 3년간 저자를 찾아 헤맸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직접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가족 해방’은 그렇게 그의 첫 책이 되었다. 평화롭게 들리는 ‘가족주의’ 담론에 담긴 폭력, 화해와 용서로 지난 일을 극복하라며 피해자를 압박하는 ‘가족 치료’의 위선을 폭로하는 책이다.
돌런은 어머니에게 40년 동안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다. 그의 어머니는 회초리로 일주일에도 여러 차례 어린 자녀들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번 모욕하고 가스라이팅을 일삼았다. 아버지는 때리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지켜주지도 않았다. 애써 학대의 맥락을 찾으며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쓰던 저자는 마흔이 넘어 상담을 통해 피해 사실을 깨닫고 어머니와 절연하여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관계 단절로 자기 삶을 구원했다. 2020년 발표된 코넬대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 성인의 약 27%가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가족과 절연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정신의학,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을 경유하고 여러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지난 몇 세기 동안 지속된 “가족이라는 거짓 우상”의 실체를 밝힌다. 인류 역사상 신체적·성적·정서적 학대의 가장 큰 가해자는 가족이라는 점을 드러내며, 이를 감춰온 구조적 원인과 책임을 추궁하고 치유의 길을 연다.
오늘날 ‘가족’은 복음주의 기독교의 신념 아래 탄생했다. 전통적인 확대가족에서 벗어난 근대의 ‘핵가족’은 근친상간적인 결합을 막으려 가톨릭이 내놓은 포고령의 산물이었다.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은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강한 핵가족’이 건강한 교회와 국가의 근간이라 믿지만, 저자는 이런 관념이 가정 내 학대를 방조하고 은폐한다고 지적한다. 가정 내 학대 피해는 종교 기관, 학교, 국가의 외면과 공모로 유지된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말 잘 듣는 우등생인 ‘골든 차일드’가 되거나 저항하는 ‘희생양’이 된다. 홀로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투명 아이’나 쾌활함을 가장해 사랑받으려 애쓰는 ‘마스코트’ 같은 유형도 있다. 피해자는 어린 시절에 이 중 한 가지 캐릭터 이상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그건 가해자의 변덕에 따라 역할이 변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학대를 사랑으로 포장하지만 둘은 공존할 수 없다.
지속적인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복합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다. 감정적 플래시백, 충동성, 해리장애, 수치심, 약물남용, 다양한 신체 질병을 경험하는 아동 학대 피해자의 규모가, 같은 증상을 겪는 참전 군인보다 열 배 더 많다는 학설도 있다. 오랜 학대는 두뇌 속 해마의 구조를 변화시켜 공감능력을 저해하고 전전두엽과 측두엽의 피질을 얇게 해 감정 조절 능력을 약화시킨다. 변형된 유전자는 유전까지 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절연’이 치유의 첫걸음이라고 본다. 회복의 첫째 조건은 피해자의 안전이고, 변함없는 가족 관계는 피해자의 고통만 더할 뿐이기 때문이다. 관계 단절은 피해자가 정한 규칙을 통해야 한다. 규칙을 만들고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학대자에게서 즉각 힘을 빼앗아올 수 있다.
종교와 자본이라는 우상의 파괴에 앞장서온 출판 편집자답게 ‘시크릿’ 같은 자기계발서를 ‘저격’하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믿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들은 불운의 책임을 피해 당사자에게 떠넘긴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런 ‘유해한 긍정성’이 빈곤, 성차별, 가정 내 학대 같은 문제의 원인을 숨기고 책임져야 할 기관이나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까닭이다. 저자는 학대의 진실을 퍼뜨리고, 피해자 ‘종족’을 발견해 사회적 연대로 확장하자고 제안한다.
핵가족 문화에 더해 ‘예의’와 ‘효도’라는 유교적 관념까지 강하게 남아있는 한국 사회에 이 책이 던지는 함의도 적잖다. ‘이상한 정상가족’(2017), ‘병명은 가족’(2021), ‘가족 없는 시대’(2026)와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2026)에 이르기까지 한국에도 가족 관계의 불편한 진실을 다룬 국내 저자들의 책이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출간돼왔다. 종교적 신념과 가부장적 관념을 바탕으로 화해와 용서를 강조하는 가족 관계 서적들이 여전히 많지만, 절연과 탈주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고 상처를 회복한 당사자의 고백이 점점 더 독자의 선택을 받고 있다. 이렇게 ‘현실’에 한 발 더 가까워진 가족 관계 담론이 차별과 억압에 시달려온 피해자를 자유롭게 할 거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