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사용을 전기로 대체하는 전기화 흐름과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으로 세계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변압기·차단기 등 전력기기 시장이 ‘뉴노멀’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력기기 호황이 단기 사이클이 아니라 구조적 수요 확대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한국신용평가는 4일 ‘전력기기 시장이 맞이한 뉴노멀’ 보고서에서 2030년 이후에도 공급 부족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북미 전력망 투자 확대로 고사양·고신뢰성 제품과 노후 설비 교체 수요가 늘고 신재생에너지·데이터센터 연계 수요 등이 동시에 집중되면서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은 늘어나는 수요를 바탕으로 수주와 실적 모두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효성중공업·에이치디(HD)현대일렉트릭·엘에스(LS)일렉트릭의 합산 수주 잔액은 2021년 말 6조8천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말 27조5천억원 수준으로 4배 넘게 증가했고 올 1분기에는 32조3천억원을 넘어섰다. 매출과 수익성 개선도 이어졌다. 1분기 연결기준 3사의 합산 매출액은 3조771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약 21%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5372억원으로 약 32% 늘었다.
보고서는 전력기기 산업의 호황이 국내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히타치에너지와 지멘스에너지, 지이(GE) 버노바 등 글로벌 전력기기 업체들은 2024년 이후 미국·유럽·중남미를 중심으로 변압기와 전력망 설비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도 관련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에이치디현대일렉트릭은 울산·앨라배마 변압기 공장 증설과 청주 배전기기 공장 신축에 나섰고, 효성중공업은 창원과 미국 멤피스 공장을 중심으로 차단기·변압기 생산시설 확충을 추진 중이다. 엘에스일렉트릭 역시 북미 배전기기 생산거점 구축과 부산 초고압변압기 생산라인 증설 등을 통해 늘어나는 전력기기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설비투자 발표가 단기 공급 능력 확대로 이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대형 변압기 등 주요 제품은 숙련 인력을 확보하고 생산을 안정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핵심 원자재와 부품의 공급 여건도 공급망 전반의 병목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채선영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생산 능력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실제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과 제품군에서의 공급 제약이 구조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며 “전력기기 공급 여건이 단기간에 정상화되기보다는 수요 대비 타이트한 수급 환경이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하영 기자 y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