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초저가 항공사인 스피릿항공이 법정관리 끝에 창립 34년만인 2일(현지시각) 결국 문을 닫았다. 미국·이스라엘-이란전쟁으로 인한 항공유 가격 급등이 회생을 노리던 이 항공사에 마지막 치명타를 입혔다. 다른 항공사들도 사정이 어렵다. 미 항공업계는 요금을 올리고 노선을 줄이며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
미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유가 폭등 사태가 항공사들에게 재앙으로 변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 항공산업의 위기를 다뤘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항공사들은 강한 여행 수요에 힘입어 노선 확장·신규 라운지 개설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러나 전쟁 발발 뒤 유가가 폭등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이번에 문을 닫은 스피릿 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겪었는데, 제트블루와의 합병 시도가 반독점 위반 혐의로 2024년 최종 무산된데다 최근 유가까지 급등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접촉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5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지분 90%를 넘길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실패로 돌아가며 결국 운영 중단을 맞았다.
다른 항공사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에어프랑스, 캐세이퍼시픽, 루프트한자 등 해외 대형 항공사들은 연료비 절감을 위한 노선 축소에 나섰다. 아메리칸항공은 올초 일회성 비용을 제외하고 주당 순이익이 2.70달러의 좋은 실적을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석달 만인 지난달 “올해 적자가 날 수 있다”는 정반대 전망을 내놨다. 유나이티드항공도 수익 전망치를 대폭 낮췄다.
항공 업계에선 특히 저가항공사 재편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요금 인상· 감편으로 버틸 수 있는 대형 항공사들과 달리 저가 요금을 강점으로 삼는 중소 항공사들은 여력이 부족한 탓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저가항공사 경영진들이 잠재적 합병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다”고 흉흉한 분위기를 전했다. 제트블루의 최고경영자인 조애나 게라티는 지난달 직원들에게 ‘회사가 파산 직전은 아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어 직원들의 불안을 달래야 했다. 항공유 가격 폭등이 항공업계 구조 재편의 도화선이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연료비 급등이 겹쳤을 때 알로하항공, 에이티에이(ATA) 항공, 스카이버스항공이 일주일 사이에 연달아 문을 닫았다.
항공사들은 항공료 인상과 노선 감축이라는 익숙한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신규 노선 개설 중단과 항공료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앤드류 레비 아벨로항공 최고경영자는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똑같은 상황이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지난해 평균 기본 운임 115달러에서 30달러를 올리는 건 정말 큰 폭의 인상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스피릿항공의 퇴장으로 남아 있는 초저가항공사 경쟁자 하나가 줄어든 셈이어서 비교적 가격 인상이 유리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항공사들은 연료비 상승분을 올해 안에 소비자 요금에 전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그 부담을 어디까지 감내할지 미지수다. 밥 조던 사우스웨스트항공 최고경영자는 “연료비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요금이 얼마나 오를 지는 결국 소비자들이 얼마를 낼 의향이 있는지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