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이 ‘영진위 패싱’에 들고 일어난 이유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없앤 영화관입장권 부과금 제도를 되살리기 위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실 문을 두드리던 영화인들은 한 의원실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영진위원장은 뭐 하느라 얼굴도 안 보이고 당신들이 이러고 다닙니까?”

영화관입장권 부과금은 영화발전기금의 주요 재원이고,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영화발전기금을 운영해 한국 영화 지원 정책을 실행하는 민관협의체다. 안 그래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관객 수가 급감해 고갈 위기에 놓인 영화발전기금이 없어지면 영진위 업무는 직격탄을 맞고, 영화인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사안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영진위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자 나온 이야기다.

최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개정 논의, 상업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한 예산 지원, 홀드백 법제화 논란, 불투명한 관람료 정산 문제 등 여러 현안이 논의되는 현장에서도 이런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영화 현장 목소리를 수렴하고 행정부와 정치인을 설득해 지원 정책을 수립해야 할 영진위가 제 역할을 못 하자, 영화단체들이 나서 문화체육관광부나 국회에 면담을 요청하고 정부도 이들과 대화하는 ‘영진위 패싱’이 고착화되고 있다.

영화인뿐 아니라 문체부 장관과 대통령까지 한국 영화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 요즘, 홀로 침묵하는 영진위를 향해 영화인들이 공개 질의서를 제출했다. 영화인연대는 최근 보낸 질의서에서 “문체부는 ‘영비법’과 ‘영상진흥기본법’ 제·개정을 통해 미디어 통합 거버넌스 개편 의지를 피력했는데, 그 어느 논의에서도 ‘영화’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며 “영화인연대는 영진위가 주무 부처의 정책 생산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판단이 사실과 다르다면 어떤 정책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지 근거를 밝히고, 사실이 맞다면 향후 어떻게 영화 정책 주무 기구로서의 기능을 회복할 것인지” “한국 영화 위기 극복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지” 등 다섯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영진위 패싱’에 대한 문제의식은 올해 초부터 있었지만, 지금 공개 질의서를 보낸 이유는 정책 실행에 가장 중요한 예산안을 짜는 5월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영화인들은 윤석열 정부가 반토막 냈던 예산안 복구를 논의하기 위해 영진위 문을 두드렸지만, 실무자들이 대거 칸국제영화제 출장으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지난해 영진위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칸에서 이전까지 한국 영화를 알리기 위해 열어왔던 ‘한국 영화의 밤’ 등 공식 행사를 전혀 치르지 않았으면서도 대규모 출장단을 보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인연대는 오는 30일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예정된 ‘영화진흥위원회·영화계 협단체 간담회’를 답변 시한으로 제시하며 “이번 간담회가 2026년 1차 추경에 대한 단순한 요식 행위나 행정적 알리바이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다섯가지 핵심 질의에 대한 명확한 솔루션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먼저 간담회를 제안했던 영진위 쪽은 뒤늦게 답변 시한을 5월8일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영진위 쪽이 제시한 연기 일정이 기관장 인사평가와 칸국제영화제 출장을 염두에 둔 ‘면피성’으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한상준 영진위원장의 책임 있는 답변이 적당한 시점에 도착해야 할 것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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