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에 우려했던 게 역시나 현실화해 올해는 뺐어요. 가해자 어머니가 ‘그 여자는 딸의 일부를 잃었고, 나는 아들의 일부를 잃었어’라는 대사인데,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시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서….” 연극 ‘그의 어머니’를 연출한 류주연은 굳이 이번 무대에서 제외한 대사를 명대사로 골랐다. 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는 아들 매튜의 어머니 브렌다가 마트에서 마주친 피해 여성 어머니의 아픔과 자신의 고통을 생각하며 한 이 대사는 지난해 초연 당시 논란을 불렀다. 그런데도 류 연출가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시하지만 않는다면, 그게 이 작품과 가장 동일한 대사”라고 했다.
브렌다 역을 맡은 배우 진서연도 “예뻤던 대사를 뺐다. 왜냐면 혹시, 또 우려돼서”라고 아쉬워하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 같으면 어떻게 할까? 저렇게 행동을 할까?’ 그 여지를 열어두는 작품으로 보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심스럽지만 작품이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봐달라는 호소였다.

‘그의 어머니’는 17살 성폭행범 아들(매튜)과 초등학생 아들(제이슨)을 키우는 싱글맘(브렌다)이 직면한 갈등과 고통을 다룬다. 지난해 배우 김선영이 브렌다 역을 맡아 2주 동안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무대에 올렸던 작품이다. 논란도 일었지만 관객들이 ‘최고의 연극’으로 꼽으면서 올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지난 16일 개막해 5월17일까지 공연한다.
굳이 가해자의 서사를? 가해자가 반성은 하는 걸까? ‘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건 내가 결정한다’며 감정을 폭발시키는 브렌다는 또 어떤가? 원작자인 영국 극작가 에번 플레이시, 연출가, 주연배우가 27일 기자들과 만나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내한한 플레이시는 실화를 바탕으로 극을 썼다고 했다. “실제 가해자 어머니는 지인이었어요. 사건을 접했을 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죠. 사건은 모자 관계,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쯤 소멸되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어요.” 가해자 서사를 다룬 것에 대해선 “사건이 피해자 가족에 끼친 영향은 사람들이 잘 이해한다. 반면 가해자 가족은 잘 모르기에 흥미진진했다. 보통 뉴스에서 범죄를 접할 때 다른 사람 이야기로 생각하는데, 내 가족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진서연도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연출 말씀대로 극에 몰입하긴 해도 가해자의 감정을 헤아려주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가해자 엄마 역할을 하면서 생각의 그릇이 커진 것 같아요.” 극 중 동생 제이슨과 또래인 아들을 키우는 진서연은 “제 아들이 9살인데, 저런 형(매튜)이 있다면 학교 다닐 때 암묵적 처형을 당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무대에서 더 악다구니 있게 몰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 진서연이라면 똑똑하게 대응할까? 멘털이 무너지고 현명하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미숙함을 드러내는 게 현실적이라 생각하고 연기했다”며 “매번 고열 상태로 무대에 오르는데 2시간 연기하고 나면 말끔하게 나은 것처럼 치유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류 연출가는 지난해와 다른 점을 강조했다. “이번 작품에선 더 과감하게 가족 얘기를 다뤘어요. 지난해는 어머니에 집중하느라 다른 인물은 집중 못 했는데, 올해는 가해자의 목적성, 성격까지 구체적으로 접근했어요.” 지난해엔 브렌다의 심리와 매튜가 소년범으로 재판받을 권리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결국 어머니에게 죄를 실토하고 책임지려는 경계에 선 인물로 매튜를 그렸다. 류 연출가는 열린 접근을 당부했다.
“우리 사회는 마녀사냥처럼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것이냐’는 댓글을 올리고, 굉장히 비난해요. 저도 개인적으로 (매튜가) 괴물이라 생각하고 비난하는데, 그 괴물에게도 가족이 있고, 그 가족, 심지어 그 괴물까지도 손가락질하지 않게 되는 게 창작물이라 생각해요. 예술이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것인데, 악인에 대해 생각해보는 이 작품은 너무 많은 자극을 줘요. 그것만으로 무대에 올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