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살상용 무기 수출 막던 ‘5유형’ 폐지…족쇄 풀었다

지난 15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정부가 21일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지침을 개정해 사실상 살상용 무기 수출을 제한해 온 ‘족쇄’를 풀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방위장비 이전 3원칙과 그 운용지침을 개정했다”며 “이제까지 일본산 군사용 완제품의 해외 이전은 구조·수송·경계·감시·소해(기뢰제거) 등 이른바 ‘5유형'에 해당하는 것들로 제한됐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원칙적으로 모든 방위 장비의 이전이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오전 일본 정부는 각료회의(국무회의)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방위장비 이전 3원칙 개정을 결정하고 5유형을 폐지했다.

이날 개정된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에 따르면, 앞으로 일본 정부는 수출 가능한 무기를 전투기·호위함·잠수함·미사일 등 살상 능력이 있는 ‘무기’와 경계관제 레이더 등 살상 능력이 없는 ‘비무기’로 분류한다. ‘무기’의 경우, 일본과 방위장비 이전협정을 체결한 17개국에 수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5유형’을 폐지하면서 이들 국가에 살상용 무기 수출의 족쇄가 사실상 풀렸다. 방위장비이전협정 협상 중인 국가 등을 더하면 향후 무기 수출이 가능한 국가는 20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또 ‘비무기’는 모든 국가에 수출이 가능하도록 제한 규정 자체가 사라졌다. 방위 장비 관련 대외 직접 투자 제한도 완화돼 해외 방위 산업에 대한 출자나 기업 합병·인수(M&A)도 가능해진다. 일본 정부는 조만간 방위성·경제산업성 등 관계 부처 국장급으로 구성된 조정 기구를 만들어 무기 수출 추진을 위한 지휘 본부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안보 환경이 더욱 엄중해지는 가운데 어떤 국가도 단독으로 자국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없으며 방위 장비에서도 상호 의존하는 파트너 국가가 필요하다”며 “주변 국가들로부터 일본이 그동안 ‘전수 방위’ 원칙 아래 유지해온 방위 장비에 대한 기대가 전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국내 평화주의 여론과 국제적 신뢰 회복 등을 위해 1967년 4월 당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국제분쟁 당사국이나 유엔 안보리 결의로 무기 수출이 금 지된 국가들에 일본산 무기 수 출을 금지한다는 ‘ 무기 수출 3원칙 ’을 발표했다. 이어 1976년 미키 다케오 총리가 ‘ 헌법과 외환관리법 정신에 따라 무기 수출에 신중을 기한다 ”고 발표해 ‘무기 수출 3원칙’을 사실상 수십년간 무기 수출 전면 금지로 전환했다. 하지만 2014년 4월 아베 신조 총리가 빗장을 풀었다. 그는 “일본이 처한 새 안보 환경과 맞지 않는다 ”는 명분으로 ‘무기 수출 3원칙’을 ‘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으로 고쳤고, 평화적 목적이나 일본과 안보상 협력국이 국제 공동 개발·생산한 경우 무기 수출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었다. 이때 평화 공헌과 국제 협력 등을 위한 경우, 구조·수송·경계·감시·소해 목적의 이른바 ‘5유형’에 해당하는 방위 장비를 ‘조건부 수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어 12년 만에 다카이치 총리가 살상용 무기 수출을 억제해온 ‘5유형’을 폐지하면서 본격적인 무기 수출길로 나서게 됐다.

일본 정부의 ‘5유형 폐지’는 동맹·우방국과 군사 연계를 강화하고, 자국 내 방산 기업들의 수출 확대를 도모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동맹·우방국들이) 자위대와 같은 장비를 사용하면 평시 훈련부터 유사시 협력이 원활해지고, 유사시 일본의 국내 무기 생산이 부족할 때 (무기 수출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방산 기업으로서는 해외 구매자가 늘어나면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생산이 안정되고, 인공지능(AI)이나 무인기(드론) 등 첨단 기술에 투자해 장비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풀이했다.

다카이치 정부는 ‘5유형’ 제한을 푸는 대신 수출 규제 해제에 따른 일부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살상용 무기에 대해서는 총리와 관계 부처 장관 4명이 참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심사를 거치기로 했다. 또 전쟁 중인 국가에 대한 수출은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포함했지만, 동맹국이 전쟁을 벌이는 경우 등 ‘일본 안보상 필요한 경우’ 별도 절차를 거쳐 수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2차 대전 패전 뒤, 평화헌법에 근거해 무기 수출을 억제했던 역대 정부 방침에 역주행하는 데 따른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국가에도 무기를 수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등, 전후 평화주의에 근거해 억제해 온 무기 수출 정책을 크게 전환했다”며 “무기 수출 결정 뒤, 국회에 문서로 사후 통지하는 형식적 억제 조처 등이 제동 장치로 기능할지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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