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앰네스티가 114개국 인권 실태를 분석한 연례 인권상황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국제법과 인권 질서가 약화하는 가운데 한국은 민주주의 회복 이후에도 인권 과제가 지속되는 ‘이행기’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 한국 지부는 21일 보도자료를 내어 '2025 세계 인권 현황 보고서'를 공개했다. 국제앰네스티는 1961년 설립된 국제 비정부기구로 전 세계 160개국 이상 1000만 명의 회원과 지지자들이 함께 하는 세계 최대의 인권 단체다. 한국지부는 1972년 출범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보고서를 통해 국가와 기업, 반인권 세력의 영향으로 국제 규범과 책임 체계가 훼손되면서 ‘반인권 세계질서’가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 대표 사례로 중동 지역 분쟁을 꼽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국제법을 위반한 군사 공격과 이란의 대응이 이어지며 민간인과 민간 기반시설 피해가 확대되고 있고, 그 여파가 지역을 넘어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또 국제형사재판소(ICC) 등 국제 사법체계가 약화하면서 국제적 책임 규명 기능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 과제가 교차하는 이행기”로 평가했다. 2024년 인권 상황을 다룬 전년도 보고서가 계엄령 선포와 탄핵 등 정치적 위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정권 교체, 후속 수사 등 제도적 대응이 주요 변화로 나타났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인권 개선으로 직결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권리 활동가의 평화적 집회가 처벌된 사례가 있었고, 집회의 자유 제한 관행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사법부가 집회 신고 절차를 완화하는 판결을 내리는 등 일부 긍정적 변화도 나타났다고 했다.
기후 대응에서는 감축 목표 유지와 관련 부처 신설이 이뤄졌지만, 국제 권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관련 법 개정에도 법 집행과 피해자 보호는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평가됐고, 임신중지 비범죄화 법안 발의와 법적 성별 정정 판결 등을 계기로 성과 재생산 권리와 성소수자(LGBTI) 권리 논의가 확대됐다고 봤으며, 차별과 혐오 표현 증가, 양심적 병역거부, 기업 인권 책임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제시됐다.

북한은 전반적인 통제 체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억압 구조가 보다 구체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은 법률과 감시 체계를 통해 외부 정보 유입을 차단하고 있으며, 외국 콘텐츠 유포를 이유로 처형이 이뤄진 사례도 확인됐다. 정치범수용소 운영과 고문, 강제노동은 계속되고 있으며, 사형 역시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범죄에까지 적용되고 있다고 했다. 또 이동의 자유 제한, 장애인 인권 문제, 탈북민 강제송환 위험 등이 주요 의제로 새롭게 부각됐다. 국제앰네스티는 북한 사회에 대해 “일상 전반에 걸친 감시 체계가 작동하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시민사회와 국제기구의 저항과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2025년 한 해 동안 인도네시아·케냐·모로코·네팔·페루 등 10여 개국에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으며, 2026년 초에도 미국 전역에서는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 행동이 이어지며 40여 개국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연대 항해를 조직했고 국제 사법과 책임성 확보를 위한 움직임도 지속됐다.
국제앰네스티는 “2025년은 전 세계 시민과 활동가, 정치 지도자들이 연대와 저항을 보여준 해였다”며 “2026년은 우리가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해가 돼야 한다. 인권 질서가 후퇴할지 재정립될지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현재는 인류가 직면한 중대한 전환점이다. 일부 정부와 초국적 세력이 불법적인 군사 행동과 경제적 압박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 전문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