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미국 중재 아래 33년 만에 고위급 직접 회담을 열고 향후 직접 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휴전과 헤즈볼라 무장 해제 문제를 둘러싼 입장차는 여전해 즉각적인 합의 도출에는 이르지 못했다.
14일(현지시각)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양국은 이날 워싱턴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주재로 열린 회담에서 “상호 합의된 시기와 장소에서 직접 협상을 시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국무부는 이번 회담을 “1993년 이후 첫 주요 고위급 접촉”이라고 평가했다.
국무부는 성명에서 “양국이 직접 협상 개시에 필요한 단계들에 대해 생산적인 논의를 했다”며 “포괄적 평화협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적대행위 중단에 관한 모든 합의는 반드시 미국의 중재 아래 양국 정부 간에 도출돼야 하며, 별도의 경로를 통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레바논 휴전 문제를 미국-이란 협상과 분리하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란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된 미·이란 협상에서 레바논 전선도 휴전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는 예키엘 라이터 주미 이스라엘 대사와 나다 하마데 모아와드 주미 레바논 대사가 참석했다. 2시간가량 진행된 회담 뒤 라이터 대사는 “양국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평가했고, 모아와드 대사도 “건설적인 논의였다”며 휴전과 인도주의 위기 해소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쪽은 추가 회담에도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일정과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은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공식 외교관계가 없는 가운데 열린 이례적인 접촉으로, 양국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사실상 전쟁 상태를 이어왔다.
핵심 쟁점은 크게 엇갈린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내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포함한 “모든 비국가 무장세력의 무장 해제”를 요구하며 군사 작전 지속 의지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레바논은 즉각적인 휴전과 함께 2000명 이상 사망자와 약 12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인도주의 위기 대응을 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를 완전히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 헤즈볼라가 레바논 의회 및 내각에 상당한 의석과 각료직을 보유한 정치 세력이라는 점도 협상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헤즈볼라는 이번 회담 결과에 구속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회담 당일에도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향해 최소 24차례 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했고, 이스라엘 북부 지역에서는 드론·로켓 경보가 이어지는 등 교전은 계속됐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