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정부를 믿은 스타트업의 마지막 질문

[우리가 보는 세상]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여전히 이 대한민국을 믿습니다."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가 지난달 27일 긴급 기자회견을 마치며 한 말이다. 절박한 호소였지만 역설적으로 들렸다. 정부를 믿고 규제샌드박스에 들어간 기업이 이제는 정부가 약속을 지킬 것인지 묻고 있어서다.

루센트블록은 2021년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소유'를 운영했다. 법과 제도가 없던 시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발행과 유통 구조를 시험했다. 하지만 정식 제도권 진입을 위한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에서는 탈락했다.

탈락 자체가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규제샌드박스 지정이 정식 인가를 보장하는 면허는 아니다. 새로운 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자본력과 시스템, 투자자 보호 역량을 다시 심사하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결과보다 과정이다. 금융위 정례회의 보고안건에는 인가 수가 '예: 최대 2개 원칙'이라고 적혔다. 예시였던 숫자는 다음 날 보도자료에서 '최대 2개까지 인가'라는 확정된 방침으로 바뀌었다.

금융위는 국회에 인가 수 제한이 정례회의에서 '의결'됐다고 설명했다가 이를 '보고·논의'로 정정했다. 운영규칙상 의결 사항이 아닌데 실무상 착오가 있었다는 해명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더 단순해진다. 최대 2곳이라는 기준은 누가, 어떤 근거와 절차로 확정했나. 세 곳이 경쟁하면 유동성이 얼마나 분산되고 투자자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 객관적인 분석은 있었나. 정책적 재량이 넓을수록 그 판단 과정은 더욱 투명해야 한다.

루센트블록이 무조건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장을 먼저 개척했다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주면 또 다른 불공정이 된다. 다만 적어도 정식 제도 안에서 다시 평가받고 경쟁할 기회는 열려 있어야 한다.

규제샌드박스는 기업에 규제를 잠시 피하게 해주는 제도만이 아니다. 민간이 먼저 위험을 감수해 가능성을 입증하면 정부가 그 결과를 제도에 반영하겠다는 약속이다. 실증을 마친 기업이 제도화 문턱에서 신청할 길조차 찾지 못한다면 그 약속은 반쪽짜리에 그친다.

더 큰 문제는 다음 도전자에게 남을 학습효과다. 정부의 제안을 믿고 시간과 자본을 투입해 시장을 만들어도 제도가 완성되는 순간 밀려날 수 있다는 선례가 생긴다. 혁신기업은 기술보다 규제기관의 의중을 먼저 살피게 될 것이다.

금융위는 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추가 인가 필요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금 살펴야 할 것은 거래량만이 아니다. 이번 과정에서 훼손된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규제샌드박스는 혁신기업을 잠시 뛰놀게 하는 모래 놀이터가 아니다. 도전을 제도권으로 연결하는 다리여야 한다. 그 다리가 끝에서 끊겨 있다면 앞으로 누구도 선뜻 첫발을 내딛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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