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마이클 저지 신부 추모 행사 르포…"가장 암울했던 순간의 버팀목"
저지 신부, 참사 현장 달려가 구조활동 돕다가 무역센터 붕괴로 숨져
시민들, 잊힌 영웅들에 헌사…"세상이 내려앉을 때 그들은 계단을 올랐다"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마이클 저지 신부 추모 행진' 현장. 2026.9.9 nomad@yna.co.kr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더는 말할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 이 종이 말하게 하소서. 계단을 뛰어 올라간 뉴욕 소방서(FDNY) 소방관 343명, 세상이 내려앉을 때 뛰어 올라간 그들의 용기를 위해 종을 울립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오전 9시.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 성당 앞에서 9·11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시가 낭독되자, 경적이 끊이지 않는 맨해튼 한복판에 잠시 경건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시는 뉴욕 경찰(NYPD) 32명과 항만청 경찰(PAPD) 37명, 응급구조사(EMT) 8명과 구급대원에 대한 추모로 이어졌다.
"먼지 속에 서서 '나를 따라 나오라'고 외쳤던 이들", "위험을 무릅쓰고, 본능이 도망치라고 말할 때 오히려 위험 속으로 뛰어 들어간 이들"이었다.
또 생사의 갈림길에서 '침묵이 찾아올 때까지' 전화선을 지켰던 교환원들, 유독가스와 재를 마시며 버텨온 자원봉사자들, 사람을 구해내고도 감사 인사조차 받지 못했던 이들, 그리고 테러 이후 관련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까지 무수한 '잊힌 영웅들'을 향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마이클 저지 신부 추모 행진' 현장. 2026.9.9 nomad@yna.co.kr
◇ 7번가를 달려 WTC로 향한 신부, '0001번'이 되다
추모객들이 모인 곳은 맨해튼 미드타운의 31번가, 7번과 8번 애비뉴 사이 블록이다.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 성당이 자리한 이곳은 '마이클 저지 신부 거리'('Father Mychal F. Judge Street)로 통한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순직한 뉴욕소방국 소속 사제(chaplain) 고(故) 마이클 저지 신부를 기리기 위해 2002년 지정된 길이다.
참사 당일 아침, 첫 번째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WTC)와 충돌했다는 소식을 접한 신부는 성당을 떠나 현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WTC 북쪽 타워 로비에 임시 응급 쉼터가 차려지자 그는 구조활동에 나서는 소방대원, 경찰들과 마지막 기도를 올리고 구조된 부상자들의 신원 확인 등을 도왔다.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마이클 저지 신부 거리' 표지판. 2026.9.9 nomad@yna.co.kr
이후 남쪽 타워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파편이 북쪽 타워 로비를 덮쳤고, 이 과정에서 건물 안에 있던 소방관들과 함께 순직했다.
저지 신부는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신원 확인을 마치고 사망자 번호를 부여한 '0001번', 참사의 첫 공식 희생자가 됐다.
2천977명이 숨진 대참사 속에서 행정 기록상 1호로 이름을 올린 그는 뉴욕 시민들에게 그날의 아픔과 희생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 존재다.
뉴욕소방국은 저지 신부를 "가장 암울했던 순간에 현장에 뛰어들어 임종을 앞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대원들을 위로하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고 추모했다.
노동절 연휴였던 이날, 성당 앞에 수백명이 모였다. '마이클 저지 신부 추모 행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마이클 저지 신부 추모 행진' 현장. 2026.9.9 nomad@yna.co.kr
참가자들은 각기 다른 소속을 알리는 문구와 디자인을 담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절대 잊지 않겠다'(NEVER FORGET)는 문구만큼은 공통적이었다. 순직자들의 대형 사진과 추모 꽃다발을 든 이들도 눈에 띄었다.
성당 맞은편에는 뉴욕소방국 제1소방중대 및 제24사다리중대가 자리하고 있다. 저지 신부가 생전에 깊은 유대를 맺고 활동했던 곳이자, 순직 이후 그의 시신이 일시 안치돼 동료 대원들이 눈물로 기도를 올렸던 장소다.
참가자들은 성당 앞에서 기도를 올린 뒤 소방서 앞으로 자리를 옮겨 추모식을 이어갔다. 순직 소방관들의 이름과 직위가 하나씩 불릴 때마다 정적이 찾아왔다. 동료 혹은 가족을 기억하는 이들도, 이날 처음 이곳을 찾은 이들도 말없이 이름을 들었다.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마이클 저지 신부 추모 행진' 현장. 2026.9.9 nomad@yna.co.kr
◇ "밴에 타라, 7번가를 걸을 거다"
마이크를 잡은 코너 맥도널드는 이 행진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큰 규모는 아니었다고 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불쑥 '밴에 타라, 7번가를 걸을 거다'라며 소박하고 조용하게 시작했던 행진이 이렇게 큰 규모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뉴욕 경찰의 상징적인 인물인 고 스티븐 맥도널드의 아들이다. 1986년 순찰 중 총격으로 전신 마비 부상을 입은 스티븐은 이후 평화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며 활동하다 2017년 세상을 떠났다. 생전 저지 신부와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코너는 어릴 적부터 저지 신부를 자신의 영웅으로 삼고 자랐다고 했다. 둘째 아들 이름도 자신의 아버지와 신부 이름을 따 '스티븐 마이클'이라고 지었다고 소개했다. 현장에선 박수가 나왔다.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마이클 저지 신부 추모 행진' 현장. 2026.9.9 nomad@yna.co.kr
◇ 25년 전 현장으로 달려가던 그 길, 다시 종이 울렸다
성조기와 추모 깃발이 앞장서는 가운데 소방차가 길을 열었다.
트레일러에 실린 거대한 추모의 종이 그 뒤를 따랐다. 트레일러 바닥에는 순직자들 추모 명판과 동판이 놓여 있었다.
제복을 입은 남성이 경건한 표정으로 줄을 당길 때마다 묵직한 황동빛 종이 몸을 흔들며 낮고 깊은 소리를 냈다.
차량 사이로 종소리가 번졌고, 길을 지나던 시민들과 관광객들도 걸음을 늦추며 행렬을 바라봤다.
이어 참가자들은 '저희를 데려갈 곳이 있다면 인도해 주소서'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행렬은 저지 신부가 테러 직후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내달렸던 7번가를 따라, WTC 인근 성 베드로 성당까지 약 3마일(4.8㎞)을 걸었다.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마이클 저지 신부 추모 행진' 현장. 2026.9.9 nomad@yna.co.kr
참가자들은 중간중간 소방서와 경찰서에 멈춰, 그날 목숨을 잃거나 이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뉴욕 소방관 마리오 폴레트는 당시를 "가장 조용한 곳조차 믿을 수 없었다. 냄새, 먼지, 모든 게 그랬다. 그곳을 걷는 건 마치 전쟁터 같았다"고 회상했다.
행렬에는 바다 건너 프랑스 파리에서 건너온 소방관들도 함께했다.
42년간 소방관으로 일했다는 파리 소방관 크리스토퍼(59)는 올해로 15번째 9.11 추모 행사를 위해 뉴욕을 찾았다. 동료 소방관 25명과 함께다.
자비로 항공권과 숙소를 해결하며 매년 이 자리를 찾는 이유에 대해 그는 "소방관에게는 국경이 없다. 우리는 모두 형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합뉴스에 "뉴욕에서 동료들이 무너져 내릴 때 전 세계 모든 소방관이 함께 울었다"며 "마이클 저지 신부님과 희생된 영웅들을 기억하고, 그 연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매년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연숙 특파원 =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마이클 저지 신부 추모 행진' 현장. 2026.9.9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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