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님의 영상 메시지를 돌아가신 후에 공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7일 출판사 ‘이야기장수’ 인스타그램에는 짧은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지난 5일 별세한 ‘피터팬 아빠’ 전경철(64)씨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영상 편지였다.
자택에서 스스로 촬영한 영상 속 전씨는 앉은 채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그럼에도 전씨는 자폐성 발달장애를 앓는 아들 제원(27)씨를 포함한 수많은 피터팬들을 위한 보금자리 ‘네버랜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전씨는 “제 생애 마지막 여정, 중증 장애인들이 존엄하게 살아가는 네버랜드 마을의 건축, 이를 위한 피터팬 재단의 창립, 수많은 분들이 함께 걷고 있다”며 “이 길에 힘을 모아달라”는 말을 남겼다.

전씨의 아들 제원씨는 1급 중증장애인(자폐)이다. 전씨는 20여년전 이혼 뒤 홀로 제원씨를 키워왔다. 27살이지만 정신 연령은 2살 정도에 머물러 있는 제원씨를 전씨는 ‘피터팬’으로 불러왔다. ‘네버랜드’에서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팬의 모습이 아들과 똑 닮아서다.
지난해 4월 간암 말기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아들과 같은 성인 중증 자폐성 장애인을 받아줄 곳을 찾아다녔지만 1000여곳에서 모두 거절당했다. 기적은 지난 3월 문화방송(MBC) ‘실화탐사대’가 사연을 보도한 뒤 찾아왔다. 시청자들의 응원과 후원이 쏟아졌고 한 달 만에 제원씨는 충북의 한 발달장애인 자립 시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씨는 지난달 12일 방송된 티브이엔(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외면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선한 이웃이 많아요’ 이런 말을 들은 거다. 놀랍도록 따뜻했다. 거의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자신이 떠난 세상에 홀로 남을 아들의 거처를 마련한 전씨의 남은 꿈은 아들과 같은 발달장애인이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시설 ‘네버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전씨가 추진위원장을 맡은 ‘피터팬 자폐인복지재단 설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된 바 있다.
이제 전씨의 꿈은 남은 이들이 이어갈 참이다. 전씨는 생전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를 통해 1749명의 시민이 3억2460만원을 보탰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안녕, 피터팬’의 인세와 개인 후원금 1억2300만원이 더해져, 총 4억4760만원이 모인 상태다.
정부는 관련 대책 발표를 예고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6일 엑스(X·옛 트위터)에서 “돌봄의 무게를 가족만이 짊어지지 않도록, 정부는 발달장애인이 보통의 삶과 당연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하는 범정부 대책을 이번 주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7일 ‘1000개의 문을 두드린 아버지를 우리는 잊지 않겠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제원씨의 삶터가 마련된 일은 다행이지만, 이는 한 가족의 절박함이 방송과 여론을 통해 알려진 뒤에야 예외처럼 열린 문”이라며 “예외적인 기적에 머물지 않고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권리가 되도록 국가가 법률과 예산, 전문인력과 공공서비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야기장수’가 출간한 전씨의 책 ‘안녕, 피터팬’은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교보문고에서 8일 오전 10시 기준 실시간 2위에 올랐고 알라딘에서도 7일 기준 2위였다. 특히 알라딘에서는 추모 댓글와 ‘피터팬 재단’ 창립 응원 댓글을 달면 피터팬 재단에 댓글당 100원씩 적립금이 기부된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