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에너지 협력 제안
인적 이동 자유화도 강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국과 일본이 약 6조달러(약 8026조원) 규모의 경제권을 묶어 글로벌 통상 질서에서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며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을 재차 강조했다.
최 회장은 8일 공개된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과 시장이 갈라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큰 시장을 가진 쪽이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이 하나로 연결되면 약 6조달러 규모의 세계 4위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어 더욱 강한 교섭력과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고 국제 질서와 규칙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만드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경제공동체의 실질적 효과로 비용 절감을 꼽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저출산·고령화로 사회적 비용 부담이 커지는 만큼 시장을 연결하고 인프라와 서비스를 공동 활용해 기초 비용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가장 시급한 협력 분야로는 에너지를 들었다. 최 회장은 “양국이 에너지 구매부터 비축, 사용까지 공동으로 설계해 비용을 3~5%만 낮춰도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양국 간 송전망을 연결해 전력을 주고받거나 가스 파이프라인을 잇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사람의 이동 장벽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솅겐협정과 같은 형태로 한국과 일본 국민이 보다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최 회장은 수년 전부터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을 제시해왔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2002년 서울대 공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계기로 이 같은 생각을 구체화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SK의 대일 투자를 확대했고, 6~7년 전부터는 일본 경제단체들과 만나 관련 논의를 본격화했다고 밝혔다.
과거 일본 정부의 대한국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관리 강화 조치에 대해서는 “지금은 거의 무효가 된 과거의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서로 보복해도 어느 쪽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양국 경제계에서 과거와 같은 갈등을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고 말했다.
다만 한일 협력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구상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한일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경제 체제를 만들면 오히려 중국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역내 성장과 비용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 내 추가 투자 가능성도 열어뒀다. 최 회장은 AI 확산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SK하이닉스가 한국에서 많은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에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수 있는 토지와 전력, 인재, 생태계를 갖춘 지역을 검토하고 있다”며 “어디를 우선하고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는 조만간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앞서 2일 공개된 아시하신문과 인터뷰에서는 일본 반도체 대기업 키옥시아홀딩스와의 공동 생산을 ‘하나의 선택지’라고 언급해 일본 내 공장 건설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최 회장은 “키옥시아는 많은 강점을 가진 회사”라며 “키옥시아의 장래 전략 속에 SK하이닉스가 들어가면 우리는 언제든지 파트너가 될 생각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