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득이 넉넉하지 않았던 ㄱ씨는 새로 태어난 자녀 명의로 ‘우리아이자립펀드’ 계좌를 만들었다. 정부가 매년 120만원씩 넣어줬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ㄱ씨도 소액을 보탰다. 만 18살이 됐을 때 계좌에는 약 4500만원(연평균 수익률 6% 가정)이 쌓였다. 자녀는 학자금 대출이라는 족쇄 없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게 됐다. 우리아이자립펀드가 도입된 뒤 19년 후를 가정한 사례다. 이 같은 청사진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2일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한겨레에 “현재 펀드의 세부 설계를 다듬고 있다”며 “저소득층 가정의 청년들이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자산을 만들어주는 데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우리아이자립펀드 도입을 공식 발표했다. 출생 때부터 만 18살까지 자녀 명의의 펀드에 정부와 부모가 함께 돈을 넣어 장기간 운용하는 제도다.
정부 지원은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화했다. 중위소득 150%를 넘으면 정부 지원금은 없지만 중위소득 50~150% 가구는 부모 납입액의 1~2배를 정부가 연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한다. 특히 ㄱ씨의 가상 사례와 같이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는 부모가 돈을 넣지 않아도 정부가 매년 120만원을 적립해준다. 여윳돈이 부족한 가구의 자녀가 부모의 납입 능력 탓에 정부 지원에서 배제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이 자금을 대학 등록금이나 어학연수비, 창업자금 등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다. 청년들이 자금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금융교육을 제공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만기가 된 자립펀드 자금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로 옮길 수 있도록 연계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목돈을 한꺼번에 써버리기보단 자산 형성의 마중물로 계속 활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는 출생신고 때 자동으로 계좌가 개설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정책 목표만 놓고 보면 이 방법이 저소득층 가구 자녀의 자산형성에 더 유리해 보인다. 당초 정부도 이런 방식을 검토했지만, 결국 부모가 직접 신청하는 쪽을 택했다. 영국의 아동신탁기금(CTF)이 남긴 교훈 때문이다.
CTF는 영국 정부가 2002~2010년 태어난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출생 시점과 만 7살 때 두 차례 종잣돈을 지급해 성인이 될 때까지 자산을 불리도록 한 자산형성 제도다. 하지만 많은 청년은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신 명의의 계좌가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했다. 2024년 4월 기준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만기 계좌는 67만개, 총 금액은 14억파운드(약 2조6천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자립펀드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모가 직접 신청하게 해 가입 단계부터 관심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직접 가입한 계좌일수록 장기간 꾸준히 관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상품성’도 관건이다. 19년 뒤 충분한 목돈을 만들려면 세제 혜택과 낮은 수수료, 장기적으로 기대할 만한 수익률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가 예시로 든 연평균 6%의 수익률(코스피 최근 20년 연평균 수익률)을 기대하려면 투자처를 지나치게 제한하기 어렵다. 반면 자녀의 자립자금이라는 성격을 고려하면 위험자산 비중을 무작정 높이기도 어렵다. 미국 주식 등 국외자산 투자를 허용할지도 쟁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투자 가능 자산의 적절한 범위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