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식 | 작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꼭 그만큼 돌려받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의 사랑이 누군가의 돈벌이가 되거나 우스운 이야깃거리로 소모된다면 분노한다. 받은 사랑을 꼭 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자신을 사랑해줬다는 사실을 존중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것이 사랑받을 자격이며 사람의 도리다.
스포츠란 정해진 규칙 안에서 공정한 방식으로 심신의 능력을 겨루어 승리와 패배를 나누는 일이고, 경기에 참여하는 이들이 원하고 또 원해야만 하는 것은 당연히 승리다. 그래서 승리하면 웃고 패배하면 탄식한다. 하지만 ‘팬’이란, 그저 한두 경기 ‘구경’하며 박수 치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선수들과 자신, 그리고 팀을 운영하는 이들이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을 뿐 승리를 향한 의지와 열정만큼은 같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입장권을 사고 유니폼을 입으며 아무리 먼 곳이라도 원정에 동참해 같은 자리에서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그런 팬들이 분노하는 것은 질 때가 아니다. 질 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거나 근심이다. 그들이 분노하는 것은 자신의 순진한 사랑을 인질 삼아 얄팍한 잇속을 챙기는 이들을 볼 때다. 예컨대 운영자가 다른 이익을 챙기느라 팀의 전력을 축낼 때, 혹은 선수들이 개인 성적을 팀의 승리보다 위에 두거나 또 다른 어떤 이유로든 승리에 대한 집념을 팬들보다 먼저 내려놓을 때가 그런 때다. 그럴 때면 관중석에 항의의 플래카드를 걸기도 하고, 선수단 버스를 막아서기도 하며, 한시적 불매운동을 벌이거나 끝내 돌아서 버리기도 한다. 끝내 같은 마음이 될 수 없다면 몸도 함께 할 수 없으니까.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꿈같은 선물 앞에서, 한국인들은 축구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음을 자책했다. 그동안 전용구장 하나 없이, 텅 빈 관중석에 울리는 자신들의 함성으로 스스로를 격려하며 그만큼이나 애쓴 선수들이 애틋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축구장을 짓고 협회를 키우고 세금으로 시민구단들을 만들어 운영하는 일에도 흔쾌히 협조했다. 또 수많은 사람이 서포터스를 만들고 시간과 돈과 목청으로 키웠다. 그 사랑이 충분한 성과로 돌아오지 못하는 거야 그저 안타깝고 말 일이지만, 그동안 누군가의 배를 불리고 출셋길과 사업 성공의 길을 열어주는 데 이용됐다면 침묵하기 어렵다. 더구나 그런 엉뚱한 일에 밀려 팀이 약해졌고, 또 그런 일이 계속되고 있다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축구협회와 대표팀을 향한 국민적 분노는 져서가 아니고, 또 어느 선수를 빼서도, 잘못된 전술을 고집해서도 아니다. 축구협회의 수장과 그 뒤에 숨은 유력자들이 팬들의 사랑을 이용하고 배신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랑을 배신당한 축구팬들은, 혹은 세금으로 간접적이나마 축구협회와 프로리그와 대표팀을 부양하는 시민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보람을 삼고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할지, 막막하다.
청문회에서 대표팀 지도자에게 왜 졌느냐고 호통치는 의원의 목소리가 16강에 진출했다면 청문회는 없었을 것이라는 협회장의 목소리와 겹쳐 화를 돋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겼으면 조용했을 것을, 지고 나니 투정 부리는 막무가내 취급을 받는 기분이 들어서다. 이겨달라는 투정과 이기는 일에 진심을 다해달라는 요구를 구분하기가 어려운가? 모든 구성원이 이기는 일을 향해 움직일 수 있는 조직과 운영구조를 만들 방법을 찾아달라는 부탁이,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