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넘어 소부장까지…'뉴노멀' 된 장기공급계약

사업 안정성·가시성 높이고 공급과잉 재발 방지 효과

"공급사-고객사 서로 양보해야 예측 가능한 이익 성립"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김민지 강태우 기자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빅테크와 잇따라 장기공급계약(LTA)을 맺으면서 향후 수년간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게 됐다.

과거 반도체 산업이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며 불확실성에 노출됐던 것과 달리 고객사와 공급사가 한발씩 물러서 공급 과잉 재발 우려와 당면한 공급난을 모두 완화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에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계까지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면서 인공지능(AI) 전환기를 맞아 LTA가 새로운 표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촬영 홍기원]

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LTA 추진 상황에 대해 "5년이 기본인 계약을 5대 글로벌 데이터센터 고객과 완료했으며, 추가로 AI 관련 5개 대형 고객과도 협상 완료 단계"라고 밝혔다.

나아가 삼성전자는 진행 중인 협상이 완료되면 중장기 생산계획 기준으로 전체 메모리 생산능력(CAPA·캐파)의 60~70%를 다년 계약 물량으로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LTA는 기간뿐만 아니라 구속력도 대폭 높아졌다.

삼성전자는 다년 보유하는 예치금 성격의 선수금을 상당 규모로 계약 조건에 포함했다.

최근에는 D램뿐만 아니라 낸드까지 LTA를 맺는 등 메모리 산업이 단기 현물 거래에서 장기 계약 기반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SK하이닉스 상황도 다르지 않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현재 추진 중인 캐파 확대는 고객과의 파트너십이 강화되는 가운데 이를 통해 확보된 시장 수요에 대한 가시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투자은행 UBS는 SK하이닉스가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사) 및 주요 완제품 업체를 포함해 10건을 계약하는 등 LTA 재계약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LTA 체결 배경에 대해 "메모리 수요가 2030년대까지도 회사 생산 능력을 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웨이퍼에 비친 반도체 팹
(대전=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30일 대전시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 반도체 팹(Fab)에서 웨이퍼 전시물에 팹 내부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2026.7.30 utzza@yna.co.kr

LTA는 반도체를 넘어 소부장 업계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적층세라믹캐패시터(MLCC) 시장의 글로벌 선두권 업체인 삼성전기는 하이퍼스케일러 및 주요 반도체업체 등 10여개 고객사와 LTA를 체결한 데 이어 추가 요청에도 대응하고 있다.

LG이노텍은 최근 열린 미디어 테크데이에서 고부가 사업을 중심으로 LTA 적용을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기판 핵심 제품군 중 RF-SiP(통신용 주파수 시스템 인 패키지)의 경우 사업 초기부터 주요 고객사와 LTA를 맺었으며, 최근에는 FC-BGA(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 등 고부가 기판 사업에도 LTA를 확대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규 투자는 고객사의 투자 약정과 LTA를 전제로 추진하기로 하고, 2개 고객사와 추가 투자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이런 추세가 반도체 산업의 강한 사이클(경기순환) 특성을 완화함으로써 슈퍼사이클 뒤 찾아올 다운턴(경기둔화)의 폭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다년 계약은 메모리 사업의 안정성과 가시성을 높일 뿐 아니라 고객 수요에 기반한 투자 집행으로 과거 사이클에서 반복되던 공급 과잉의 재현 가능성을 낮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고객사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공급난 속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정착함으로써 시장 전체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LTA에 대해 "예측 가능한 이익은 호황기에는 메모리 기업이, 불황기에는 하이퍼 스케일러 고객사가 서로 양보해야 성립한다"며 "불황기의 보험 효과를 누리려면 호황기의 보험료를 미리 지불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최근 메모리 시장에 대해 "지금 가격은 비정상이다. 떨어져야 한다"며 "공급을 늘려 가격을 떨어뜨려도 돈을 못 버는 게 아니다. 시장을 보호하면서 키워야 한국 반도체 산업도 유지·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jo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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