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걱정에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만 틀어"…문 활짝 열고 상의도 벗어
몸 불편한 주민들, 더운 날씨에 이중고…폭염 속 더 선명해진 양극화

[촬영 황수빈]
(대구=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에어컨은 있는데 전기요금이 무서워 못 켭니다."
폭염경보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대구 쪽방촌에서는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 채 무더위를 버티는 주민들의 힘겨운 여름나기가 계속되고 있다.
전기요금 부담에 한낮에는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에 의존해 여름을 버티는 '에너지 빈곤'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4일 오전 11시께, 대구 서구 쪽방촌.
이곳에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쪽방촌이 모여있다.
날이 더운 탓인지 골목은 오가는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월세방 있습니다'라는 간판이 붙은 한 주택 대문을 지나 들어가니 마당이 나왔다.
일반 단독 주택 규모의 마당에는 쪽방 10곳 정도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이곳 건물은 뜨거운 볕을 견디기에는 벽이 얇고 창문도 작아 보였다.
내부 열기를 견디지 못했는지 이른 오전부터 쪽방마다 방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일찌감치 더위를 피해 밖으로 나간 탓에 사람이 없는 방도 더러 보였다.

[촬영 황수빈]
한 주민은 "여름엔 볕이 건물에 들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뜨거워져서 미리 더위를 피하러 나가기도 한다"고 했다.
이곳에 10여년째 사는 이모(65)씨는 윗옷을 훌러덩 벗은 채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
이씨는 더웠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선풍기 바로 옆에는 에어컨이 벽에 걸려 있었지만, 이씨는 요금 걱정에 에어컨을 틀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방 내부는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숨을 쉴 때마다 턱턱 막히는 듯했다.
그는 "에어컨을 틀려면 한 달에 3만원을 내야 하는데 지금 형편에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씨는 수십년간 조경업 근로자로 일해왔지만, 건강 악화로 일을 쉬기 시작하게 되면서 에어컨 요금을 내는 것도 부담스러운 처지가 됐다고 한다.
그는 "한낮이 되면 선풍기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며 "밖에 나가고 싶어도 도저히 갈 곳이 없어 동네 공원에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해마다 겪는 일이라 이제는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견딘다"고 덧붙였다.
이웃 쪽방촌 주민 김모(86)씨도 선풍기로 여름을 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허리를 다쳐 두꺼운 복대를 온종일 차야 하는데 요즘 같은 날씨에는 땀이 차 고역이라고 한다.
그는 "에어컨은 너무 더워서 견디기 힘들 때 아주 잠깐 튼다"며 "여름엔 쪽방촌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가 펄펄 끓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이 정도 더위는 진짜 더위도 아니다"라며 웃었다.
신은경 서구제일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은 "여름에는 밤에 자기 힘들고 낮에는 뜨거운 볕 때문에 외부 활동이 어려워 쪽방 주민에게는 힘겨운 시기"라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얼음물 등 여름 관련 물품을 나눠주고 있다"고 말했다.

[촬영 황수빈]
대구기상청에 따르면 폭염경보가 내려진 대구는 이날 오후 1시 기준 34.3도까지 치솟았다.
자동기상관측장비(AWS) 기준으로는 북구 서변동 35.1도, 동구 신암동 34.9도 등 35도를 웃돌았다.
이날 대구는 최고 기온 36도까지 예보된 상태다.
대구시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해 지난달부터 에너지바우처 사업 신청을 받고 있다.
지원 금액은 세대수에 따라 29만5천200원∼70만1천300원까지 지원된다.
대구시 관계자는 "그동안 쪽방촌의 경우 전기 계량기가 세대마다 없어 다음 해에 납입한 전기료를 돌려주는 사후 지원을 해왔다"며 "올해부터는 쪽방촌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이전보다 빨리 받을 수 있도록 사전 신청 방법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hsb@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