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60원이나 떨어졌다
한동안 1,560원 선까지 치솟으며 고공행진을 하던 환율이 1,400원대로 뚝 떨어지자마자, "지금이 기회다"라며 달러를 사들인 사람들이 정말 많았네요. 이달 들어 단 7거래일 만에 5대 은행의 달러 예금이 무려 8조 8천억 원(58억 6천만 달러)이나 급증해 잔액이 100조 원을 돌파했다니, 자산가들과 기업들의 발 빠른 움직임이 놀랍습니다.
달러 예금 잔액 3년 반 만에 최대치
개인들은 그동안 환율이 너무 올라 차익 실현을 하며 달러를 묵혀두다가 이번 하락을 계기로 다시 매수로 돌아섰고, 기업들은 결제 대금과 환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넉 달째 달러를 꾸준히 모아 온 결과네요. 덕분에 전체 잔액이 2022년 12월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SK하이닉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ADR)이 환율 하락의 트리거
공모가로 무려 265억 7천만 달러(약 40조 원)라는 엄청난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게 지난달 우리나라 무역수지 흑자의 70%를 넘는 규모라니 시장이 흔들릴 만도 합니다.
이 거대한 달러 뭉칫돈이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시장에서는 이미 선물환 매도가 쏟아지며 환율을 끌어내렸네요. 대기업의 해외 상장 이슈 하나가 대한민국 외환시장의 물줄기를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돈의 흐름은 살아있는 생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분간 1,500원 선을 두고 상하방 압력이 어떻게 작용할지 계속 지켜봐야겠네요.
위기 상황인가?
과거에는 환율이 1,300원만 넘어도 '위기 상황'이라며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졌다고 대대적으로 보도되곤 했지요. 하지만
과거의 문법(무역 흑자가 나면 환율이 내려간다)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 상황이 왜 '뉴노멀'이 되었는지, 그 구조적 이유를 짚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돈을 벌어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구조 (트리플 달러 쌓아두기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대한민국 경제의 체질 변화에 있네요. 예전에는 수출 기업들이 해외에서 달러를 벌면 곧바로 원화로 바꿔 국내 투자나 급여로 썼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올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개인과 기관 불문하고 미국 주식, 해외 채권 등 해외 자산 쇼핑에 엄청난 달러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기업들도 굳이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외화 예금에 그대로 쟁여두거나, 해외 현지 공장 증설 등에 바로 재투자합니다.
최근 무역 흑자의 상당 부분이 상품 수출이 아닌 '해외 자산에서 나오는 배당과 이자(투자소득)'에서 발생하다 보니, 이 돈이 국내 외환시장으로 유입되어 원화 가치를 밀어 올리는 힘이 현저히 약해졌습니다. 즉, 달러가 국내에 머물지 않고 밖에서만 도는 구조가 고착화된 셈입니다.
엔화·위안화와의 '동조화' 압박
우리 원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프록시(Proxy·대리) 통화로 취급받아 주변 강대국 통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곤 하죠.
특히 역대급 약세를 겪은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에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아시아 전반의 통화 가치가 절하되는 흐름 속에서 원화 혼자만 강세를 보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글로벌 금리 기조와 맞물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대규모 매도세를 보인 것도 원화 약세를 부채질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팔고 나가려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 하니 달러 수요가 치솟고 원화 가치는 떨어지게 되죠.
이제 1,200원대 환율은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처럼,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이미 1,400원대 중후반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높은 환율 박스권'자체가 뉴노멀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수입 원가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우리 경제와 기업들에 참 만만치 않은 과제가 주어진 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