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준호 |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한국지역순환경제학회 회장
수십조원 단위의 ‘인공지능(AI)·반도체 특화단지’ 유치 소식에 호남 지역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알이(RE)100과 연계한 거대 첨단 생산기지 구축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연일 쏟아내며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축포가 터지는 바로 지금, 우리는 냉정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거대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면 그 지역은 과연 발전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거대 자본에 대한 지역의 ‘통제권’이 빠진 현재 방식이라면, 지역에는 ‘껍데기’만 내어주고 막대한 부는 서울로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합법적 수탈’의 서막일 뿐이다.
거대 장치 산업이 비수도권에 들어설 때 벌어지는 비극적 공식은 명확하다. 공장 가동으로 지역내총생산(GRDP)과 같은 외형적 지표는 일시적으로 급증할 것이다. 그러나 이윤을 배분하고 기획하는 핵심 권한, 즉 ‘결재권’이 서울 본사에 있는 한, 창출된 막대한 영업 잉여와 고급 인력의 임금은 모두 중앙의 금융망을 타고 블랙홀처럼 빨려 올라간다. 만성적인 ‘구조적 역류’(역외유출)다.
더 뼈아픈 것은 생태 환경과 자원의 일방적 착취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막대한 물과 전력, 광활한 토지와 그에 따른 환경 부담은 오롯이 호남이 감당하지만, 그로 인한 과실은 지역에 안착하지 못한다. 시민의 민주적 통제가 빠진 채, 지역 토호와 관료 카르텔이 대자본과 맹목적으로 야합하는 이른바 ‘오염된 분권’ 체제 아래에서 벌어지는 참사다. 이 가짜 분권은 지역을 철저히 거대 자본의 하청 기지이자 ‘생산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할 뿐이다.
이 절망적인 구조를 타파할 유일한 열쇠는 다름 아닌 지역의 ‘경제적 자기 결정권’이다. 그리고 그 실천적 해답은 독일 드레스덴의 반도체 혁신 클러스터 ‘실리콘 작센’의 궤적에 명확히 새겨져 있다.
실리콘 작센이 자본의 역외유출을 막고 부와 기술을 지역 안에서 내생적으로 순환시킬 수 있었던 핵심은, 독일 연방제 특유의 강력한 주정부 권한이나 중앙정부의 하향식 분권에 있지 않았다. 진짜 동력은 드레스덴 공대, 프라운호퍼 등 공공연구소, 400여 향토 중소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실리콘 작센 협회’라는 이름으로 끈끈하게 뭉친, 밑에서부터의 ‘어소시에이션’(지역 차원의 연대 체제) 그 자체에 있었다.
이 치열한 지역 연대망은 공장을 지으러 들어온 대만의 다국적 반도체 거대 자본(TSMC)이 이윤을 독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거대 자본이 지역 산업 생태계에 발을 들이려면 반드시 지역 기업들과 합작법인을 세우고 공공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도록 강력한 물리·사회적 족쇄를 채운 것이다. 치열한 시민 자치의 힘으로 외부 대자본을 지역의 ‘공공적 울타리’ 안으로 강제로 끌어들여, 그들의 첨단 기술(IP)과 막대한 이윤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사회의 자산으로 온전히 ‘사회화’되도록 완벽한 댐을 구축해 냈다. 완전한 분권이라는 제도적 껍데기가 없었음에도, 시민 자치의 역량이 펄떡이고 있었기에 거대 자본을 옭아맬 수 있었던 것이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나아갈 길도 정확히 이와 같아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호남의 시민사회는 실리콘 작센의 실증적 교훈을 직시해야 한다. 단순히 공장 유치에 환호하며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대자본의 멱살을 쥐고 그들을 통제할 제도의 설계도를 치열하게 그려내야 한다.
거대 자본이 호남의 귀한 생태 자원과 막대한 국책 보조금을 쓰는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첫째, 지역에서 창출된 막대한 이윤을 독자적으로 순환시키고 지역에 재투자할 ‘지역재투자법’을 수용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둘째, 공장 입지와 단지 주변의 거대한 개발 이익이 소수 투기 세력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지역공동체 토지신탁’(CLT)을 도입해 지대를 사회화해야 한다. 셋째, 이윤의 원천적 유출을 막기 위해 본사 기능의 일부를 지역에 이전하는 ‘지역본사제’를 의무화해야 한다. 국가와 중앙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줄 때 이러한 ‘조건부 정책 조정’이 이루어지도록 판을 흔들어야 한다.
결국 이 처절한 생존의 최전선에서 거대 자본과 맞붙어 지역을 지켜내는 최후의 주체는 온정적인 국가도, 지자체장도 아니다. 오직 ‘시민 자치로 무장된 지역 시민사회’뿐이다. ‘경제적 자기 결정권’은 국가가 하사하는 얌전한 선물이 아니다. 시민 자치의 굳건한 연대로 대자본과 맞서 당당하게 쟁취해 내는 전리품이다. 환호성을 거두고, 이제 묵묵히 자본을 옭아맬 ‘시민의 족쇄’를 벼려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