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2016년 어느날 국가대표 복싱선수 장윤호를 통해 강동구 모처에서 권정달 의원을 만났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필자는 이분이 역사적 정치적 평가를 떠나 안동공고 복싱부 창설에 산파(産婆) 역을 담당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도 권정달 의원은 장윤호와 함께 필자가 운영하는 체육관에 여러 차례 들려 오찬을 하였다.
권정달 의원의 고향인 경북 안동은 이육사 이상용 김동삼 등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聖地)다.
1959년 전주 출신의 장윤호는 남산 공전 재학시절 유제형 김지원과 트로이카를 형성 전국 무대를 휩쓴 강타자였다.
1979년 한국체대에 진학한 장윤호는 1982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배 선발전에 출전 정용범(동국대)을 꺾고 웰터급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돌풍을 일으킨 복서였다.

필자가 가까이서 지켜본 권정달 의원은 안동 출신 원로 복서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할 정도로 복싱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많은 정치인이었다.
권정달 의원의 주도적(主導的) 역할로 창단된 안동공고에 부임 꽃을 피운 인물이 현 대한 복싱협회 기술 위원으로 재직 중인 김재한이다.
1952년 대하 역사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의 탄생지인 청송 출신의 김재한은 1968년 대구 성광고 재학시절 국일 체육관 김달원 관장에게 복싱을 수학했다.
1972년 일반입시를 거쳐 영남대학에 진학한 김재한은 1973년 제4회 학생 신인대회 대학부 라이트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74년 제55회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김재한은 1976년 영남대학을 졸업한다, 여담이지만 이 무렵 영남대학은 대광고를 졸업하고 1973년 입학한 김재박이 투타에서 맹활약 1976년 봄철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과 함께 대회 2연패를 달성 모처럼 스포츠계에서 영남대학 이미지를 크게 부각(浮刻)시킨 해였다.

1977년 상주 남산 중학 에 체육 교사로 부임하면서 김재한의 복싱 지도자 인생이 펼쳐진다. 이어진 점촌 문창고에서 복싱부를 담당 이성국이라는 청소년 대표를 탄생시킨다.
1979년 안동공고로 이적한 김재한은 신생팀 안동공고에서 본격적인 선수양성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 김응희 김정묵 박희태 박진수 등 정상급 복서들을 배출한다.
이들 중 군계일학(群鷄一鶴)은 단연 김응희였다.
1980년 곽귀근 (경북체고) 송준석(전남체고)과 함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어 해외 원정을 경험한 김응희는 안동공고 대표선수였다.

1981년 왼손잡이 복서 김응희는 제62회 전국체전 선발전 결승에서 전통의 명문 경북체고 박정하와 격돌한다. 박정하는 그해 5월 제5회 김명복 배 LW 급에서 경북체고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차지한 복서였다.
지난해 박정하의 동료 복서 경북체고 하종호에게 1패를 당한 적이 있는 김응희는 배수진을 치고 비장한 각오로 경북체고 박정하와 맞섰다.
이 경기는 코끼리와 메뚜기의 대결로 전망될 정도로 김응희의 현격한 열세가 예상되는 경기였다. 하지만 왼손잡이 복서 김응희는 승부처인 2회 특유의 근성과 정신력을 발휘 왼손 카운터 펀치로 박정하에 한차례 다운을 탈취하는등 우세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판정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경기에서 승리한 김응희를 비롯한 안동공고 복서들은 특별한 환경에서 훈련하는 복서들이 아니라 특별한 마음 자세를 가진 복서들에게 돌아가는 승전보임을 확인 할 수 있는 뜻깊은 대회였다.
이대회에서 김재한 사단의 안동공고는 김응희를 포함한 김기용 김정묵 박의태 김웅현등 5체급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83년 용인대학에 특기생으로 진학한 안동공고 김응희는 졸업 후 경찰에 투신 1998년 노원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무려 18년 만에 범인 검거에 성공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한 경찰청장배 복싱대회가 열리면 경찰을 대표하여 시상식에 참석 선수들에게 격려를 해주면서 격려해 주는 복싱인이 바로 김응희다.
이후 김재한은 안동공고를 거쳐 경북 체 중고로 팀을 옮기면서 지도자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곳에서 88 서울 올림픽 (페더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재혁(한국체대)을 위시하여 기라성(綺羅星)같은 국가대표 복서 10명을 순차적으로 탄생시키면서 김재한 감독은 지도자로 꽃을 피웠다.
2014년 매천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퇴임한 김재한은 현재 대한 복싱협회 기술 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수년 전 조철제 원로회 회장과 필자는 올림픽 공원 커피숍에서 만나 담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조철제 회장은 김재한은 오랜 기간 (37년) 체육 교사로 재직한 교장 출신의 복싱인으로 경북지역에서 6개의 중. 고등학교를 창단 복싱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복싱인이라고 밝혔다.
또한 2017년에는 6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제복싱(AIBA) 심판위원 자격증을 취득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한국을 대표하여 국제 심판으로 참관한 식을줄 모르는 열정을 지닌 복싱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복싱 경기장에서 김재한 기술 위원과 함께 모습을 보인 이상우 심판은 지난해 9월 링 사고로 쓰러진 조연호 군을 위해 수술을 마칠 때까지 병원을 떠나지 않고 5시간을 수술 결과를 현장에서 묵묵히 지켜본 복싱인이다.
이를 포함 조연호 군을 위해 일선에서 다방면 에서 심혈을 기울인 복싱인이 바로 이상우 심판이다. 이점은 필자가 취재차 독대한 조연호 부모가 인정하는 명백한 팩트(Fact)다. 안타까운 점은 이상우 심판 혼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협회 직원 가운데 유일(唯一)하게 사퇴를 감행하였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국체전대회를 이상우 심판 자신이 나고 자란 부산에서 거행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부르는 협회 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섭섭했을까.
복싱인의 한 사람으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각설하고 일평생 오직 복싱을 위해 투신한 현(現) 김재한 대한 복싱협회 기술 위원이 인생 3막을 링 위에 서 마음껏 정열을 불태우고 떠나길 기대하면서 이번 주 복싱 열전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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