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다국적기업 이익 미래 위해 축적
횡재성 세수, 일회성 지출에 사용 안해
반도체 이익 일반예산과 구분해 관리해야
우리나라의 법인세 세수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 확산으로 고성능 메모리와 첨단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고 있고, 그 결과 반도체 경기가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은 곧 법인세 증가로 이어진다. 특히 법인세는 기업의 당해연도 실적이 다음 해 신고·납부에 반영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올해의 반도체 호황은 올해뿐 아니라 내년 세수에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늘어난 세수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둘러싼 논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국가채무를 갚는 데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어려운 계층과 청년층에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이 점에서 아일랜드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아일랜드는 영국 옆에 있는 작은 나라다. 경제 규모도 명목 GDP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3분의 1 정도다. 그런데 2024년에 이 나라에는 대규모 재정흑자가 예상되었다.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2025년 예산을 위한 하원 연설에서 재정흑자 원인으로 두 가지를 언급했다.
하나는 법인세 수입의 급증이다. 아일랜드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일라이릴리 같은 미국계 대형 다국적기업의 법인과 지점이 많다. 이 기업들의 이익이 아일랜드에서 과세되면서 법인세가 크게 늘었다. 그러나 아일랜드 정부는 이를 국내 경제 여건이 좋아져서 늘어난 안정적 세수로 보지 않았다. 특정 다국적기업에 크게 의존하는 일종의 횡재성 세수로 보았다. 실제로 2023년에는 단 세 개의 다국적기업이 아일랜드 법인세 수입의 38%를 낸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른 하나는 애플 세금분쟁에서 생긴 일회성 수입이다. 유럽위원회는 2016년 아일랜드가 애플에 부당한 세제혜택을 주었다고 판단했고, 아일랜드가 최대 130억 유로를 회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소송 끝에 2024년 9월 유럽연합 사법재판소가 이 결정을 확정하면서, 아일랜드는 애플로부터 약 130억 유로, 우리 돈으로 20조 원이 넘는 금액을 회수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 일시적 초과세수를 일반예산과 분리하기 위해 2024년 두 개의 기금을 만들었다. 초과세수가 일반예산 안에 그대로 들어오면 당장의 지출 요구에 휩쓸리기 쉽다. 그래서 사용 목적과 인출 조건을 별도로 정해,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하나는 '미래 아일랜드 기금'이다. 이는 2041년 및 그 이후 발생하는 국가 지출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장기 저축성 기금이다. 동 기금법에 따라 2041년 전에는 인출이 금지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인프라·기후·자연 기금'이다. 법적으로 이 기금은 경제 또는 재정상황이 중대하게 악화되었거나 다음 해에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경우와 2026년부터 2030년까지는 일부 환경 프로젝트에 대한 국가 지출을 지원하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해당 환경 프로젝트는 법적으로 자세히 열거되어 있으며, 인출한도도 순자산가치의 22.5%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였다. 아일랜드식 기금화의 핵심은 일시적 세수를 일상적 지출과 분리해 다음 위기와 다음 세대를 위해 관리하는 데 있다.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하원 연설에서 일회성 수입은 일상적 지출이나 조세 기반 축소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재원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아일랜드는 미래 아일랜드 기금에 43억 유로, 인프라·기후·자연 기금에 20억 유로를 이전했고, 추가로 미래 아일랜드 기금에 41억 유로를 더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해 말까지 두 기금에 160억 유로 이상이 쌓일 것으로 전망했다.
아일랜드 사례를 참고한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은 기금을 만들자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일시적 세수를 일반예산과 구분하고 사용 조건을 명확히 하여 단기적인 압력으로부터 일정 부분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를 어떻게 설계할지는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해야 할 것이다. 호황의 세수를 미래를 위한 재정자산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재정운용의 지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