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사람들이 잘 사는 부조리한 현실 보여주려 해”…‘허수아비’ 박준우 감독·이지현 작가

‘허수아비’ 스틸컷. 케이티(KT)스튜디오지니 제공

“이 드라마의 시작은 엄연히 현실에 있습니다.”

지난 26일 종영한 이엔에이(ENA) 12부작 드라마 ‘허수아비’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진범이 잡힌 이후의 시점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다. 실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는 만큼 드라마 역시 권선징악의 결말과는 거리가 멀다. 드라마를 연출한 박준우 감독은 잘못했던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27일 ‘허수아비’의 박준우 감독, 이지현 작가와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강성이라는 허구의 마을을 배경으로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쫓는 형사 강태주(박해수)가 자신이 혐오하는 검사 차시영(이희준)과 뜻밖의 공조 관계를 맺게 되는 이야기다. 이춘재는 1986년 1월부터, 처제를 살해해 검거된 1994년 1월까지 경기도 화성과 충북 청주 등지에서 모두 15명을 살해하고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지른 자다.

‘허수아비’ 스틸컷. 케이티(KT)스튜디오지니 제공

박 감독은 피해자들이 당했던 이중의 폭력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이춘재, 그리고 공권력으로부터 이중의 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했어요. 국가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충분한 반성, 숙의가 없었다는 점을 메시지로 두고 작업을 시작했죠.” 참담했던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 만큼 ‘사이다 전개’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박 감독은 말했다. “배우들도 잘못한 사람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드라마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권선징악의 결말 없이도 1회 2.9%로 시작해 마지막 회인 12회에서 8.1%의 시청률을 찍으며 높은 성적을 거뒀다.

‘허수아비’ 스틸컷. 케이티(KT)스튜디오지니 제공

다만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주인공 강태주만큼은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인물로 설정했다. 이 작가는 기획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강태주 캐릭터에 판타지를 가미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고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들이 공권력에 의해 일어났는데,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잖아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갖고 있는 작은 바람이라면 현실의 누군가도 태주처럼 이 일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허수아비’ 스틸컷. 케이티(KT)스튜디오지니 제공

이 드라마의 기획은 피해자들로부터 출발했다. 박 감독은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모범택시’를 만들며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윤성여씨와 고 김용복씨를 만나게 됐다고 한다. 윤씨는 용의자로 지목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인물이고, 김씨는 경찰의 은폐로 오랜 시간 실종으로 처리됐던 피해자 고 김현정양의 아버지였다. 드라마 방영 이후 박 감독은 윤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윤 선생님이 12부만 하냐고, 아쉽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김현정양의 오빠께서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방송을 못 보셨어요.”

‘허수아비’의 이지현 작가, 박준우 감독. 스튜디오 안자일렌 제공

제목 ‘허수아비’에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이 작가는 말했다. “그 시대에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공권력을 허수아비에 빗대면 어떨까 했어요. 또 허수아비도 논밭에 사람인 척하고 서 있잖아요. 범인도 인간인 척하면서 인간 같지 않은 짓을 하죠. 태주가 범인을 두고 하는 말 중에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이 인간인 척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네’라는 말이 있는데 드라마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대사예요.”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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