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민심’ 거슬러 오르기의 고단함 [세상읽기]

전국 민주진보교육감 예비후보들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 열고 공약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병곤 | 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성적표 발급, 등수 다 찍혀 나오게 해버린다.’ ‘초등 때 전국 동일한 시험지로 같은 날에 시험 본다.’ ‘고등학교 수준별 분반 만든다.’ ‘수시, 5등급에서 16등급으로 더 잘게 나눈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SNS) ‘스레드’에서 본 댓글 가운데 일부다. 한 참여자가 ‘만약 당신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교육감으로 당선된다면 어떤 정책을 시행하겠냐’고 운을 떼자, ‘스친이’(‘스레드 친구’의 줄임말)들 글이 300여개나 달렸다. 댓글 하나하나를 복사해서 한 파일로 모은 다음, 빈도 분석을 해봤다.

정기 고사 부활과 대학입시 정시 비중 확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학생 체벌과 징계 부활, 고교학점제와 자유학기제 폐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체, 한문과 영어 교육 강화, 수행평가 폐지 또는 축소, 수준별 수업 도입, 성적 공개와 등수 표기, 방학이나 재량 휴업 축소, 머리와 복장 규제 강화, 심지어 반공 교육 실시 주장까지 담겼다.

23개로 분류된 항목 가운데 내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독서와 글쓰기 강화에는 찬성하지만 ‘스친이’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일기 쓰기, 받아쓰기 부활, 필독서 독후감 의무화 정도에 그쳤다. 학부모의 부당한 민원을 차단하는 방식은 악성 민원인 처벌과 공개, 해당 부모 자녀의 정학 등 강력 처벌과 응징같이 강압적인 해결 방안뿐이다.

‘30대 과장님을 위한 엑스(X)’라는 별칭이 붙은 한국의 스레드. 20~30대 중반 사이 연령층 사용자가 중심을 이뤄 지난해 활성 사용자 540만명을 넘긴 플랫폼이다. 사용자끼리 반말을 쓰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파격적인 주제나 제안, 소식들이 거침없이 올라온다. 정보통신기술, 창업 초기 기업 종사자, 유행을 이끄는 이들, 그리고 서울의 학군 좋은 지역 중심 학부모 커뮤니티가 스레드 내부에 형성되어 있다. 사용자들은 스마트해 보이는데, 교육정책 관련 의견만큼은 한 세대 이전 어르신들이 지닌 보수성을 웃도는 것 같아 내심 놀라웠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긴 글은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의견처럼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당대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이들의 솔직한 심정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친이’들이 남긴 거친 언변을 엿보니 내가 해왔고, 앞으로도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신산스러운 고역인가 새삼 확인된다. 내심, “당신들은 진심으로 자녀를 사랑하긴 하나?” 묻고 싶었다. 아이들을 시험에 옭아매고, 서로 비교하고, 시간을 쥐어짜고, 자유를 박탈하는 내용으로 자신들의 욕망과 불안을 투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불확실함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상황. 인간은 그런 조건 아래에 놓이면 항상 불안하다. ‘오징어 게임’ 같은 세상에서는 강력한 힘과 실력만이 나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스친이’들이 마음속에 감췄다가 댓글로 드러낸 내용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사회 구성원이 살아가며 느끼고 판단한 의식 상태를 그대로 두면 우리는 모두 극우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다. 사자가 가젤을 사냥하고, 하이에나가 표범의 먹이를 빼앗기 위해 피를 흘리며, 같은 늑대 무리 안에서도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서열 싸움을 벌이지 않느냐. 이것이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강물의 흐름을 역행하면서 ‘의식의 노’를 힘겹게 저어 가야 한다. 근대 러시아의 철학자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폿킨은 대표 저작 ‘만물은 서로 돕는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연계에서는 동종 사이에 생존경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자가 사자를 끊임없이 죽이는 일은 없다. 사자는 무리 지어 사냥하고 새끼를 공동으로 돌본다. 다른 종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은 거대한 상호 협력의 네트워크라는 사실을 수천가지 사례로 입증할 수 있다.”

진짜 교육개혁은 ‘감춰진 민심의 바닥까지’ 뒤집을 만큼 설득력이 있을 때 이뤄진다. 한국은 교육에서 반복 암기, 치열한 시험 경쟁, 모방으로 선진국 따라잡기를 통해 경제성장을 맛본 사회다. 학자들의 고급스러운 논변이나 비유, 추상적인 개념어 따위로 한국인의 교육 의식을 일순간 바꿀 수 없다. 여러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는 정책과 제도를 만든다 해도 교육 민심의 밑바닥까지 바꾸기는 버겁다. 이 엄연한 사실을 똑똑히 바라보자. 대세를 거슬러 가고자 하는 내 의지에 독설로 힘을 보태준 ‘스친이’들에게 씁쓸한 감사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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