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동원이 에이치오티(H.O.T.)가 연상되는 비주얼의 1세대 아이돌로 변신했다. 내향인으로 유명한 엄태구는 거친 랩을 쏟아내고, 청순한 이미지의 박지현은 핑클의 이효리처럼 태닝한 피부로 건강미를 발산한다. ‘발라드 왕자’에 빙의한 오정세는 순정만화 남자 주인공이 입을 법한 블라우스에 장발을 하고 나타난다.
새달 3일 개봉하는 영화 ‘와일드 씽’은 네 배우의 다소 충격적인 변신으로 초장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와이투케이(Y2K) 세기말 가수로 변신한 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그 시절 감성을 소환하며 흥을 돋우고, 거의 모든 대사와 상황에 코믹한 요소를 더해, 1시간47분 상영 시간 내내 관객 입꼬리를 잡아 올리고 놔주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은 영화 ‘친구’와 ‘엽기적인 그녀’가 인기 끌던 시기. 브레이크댄스에 심취한 자칭 ‘댄스머신’ 현우(강동원)는 기획사 대표 용구(신하균)에게 캐스팅당하고, 힙합을 사랑하는 상구(엄태구), 돈을 사랑하는 도미(박지현)와 3인조 혼성그룹 트라이앵글로 데뷔한다. 1집 타이틀곡 ‘러브 이즈’가 큰 인기를 끌면서 급부상하지만 영광도 잠시, 2집 발매 직후 터진 일련의 사건으로 그룹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로부터 20년 뒤, 트라이앵글은 잊힌 지 오래고 현우는 생계형 방송인이 된다. 그런 현우에게 갑자기 트라이앵글 공연 제안이 오고, 상구와 도미를 불러 모아 공연장으로 향한다.

세 배우가 쿨과 코요태를 떠올리게 하는 혼성그룹을 연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영화는 개봉 전부터 주목받았다. 영화 홍보차 유튜브에 올린 트라이앵글의 ‘러브 이즈’ 뮤직비디오는 공개 한달 만인 20일 기준 256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청룡영화상 축하 무대 꼭 해줬으면 좋겠다” 등 댓글 7천여개가 달렸다. 특히 강동원은 브리지를 넣은 단발머리에 두건을 두른 스타일부터 에이치오티 문희준 헤어스타일에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까지 선보인다. 목 디스크가 있는데도 직접 헤드스핀까지 했다. 파격적인 도전에 누리꾼들 사이에선 “강동원이 왜 이렇게 무리하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동원은 “(배역을) 고민 없이 수락했다”며 “제가 고등학생 때 티브이(TV)에서 봤던 그 모습을 그대로 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 봤을 때 멋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한 형이 제가 춤추는 걸 보고 ‘뭐고? 니 요새 돈 없나?’ 묻기도 했다”며 웃었다.

오정세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그는 과거 트라이앵글에 밀려 39주째 2위에만 머문 발라드 왕자 성곤을 연기했다. 청순한 블라우스 차림에 얼굴을 반쯤 가린 장발, 감미로운 목소리로 “네가 좋아” 하는 달콤한 가사가 오정세의 평소 이미지와 부조화를 이루며 웃음을 자아낸다.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며 가요계를 떠난 뒤 멧돼지 사냥꾼으로 직업을 바꾼 사연과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트라이앵글 못지않게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웃픈’ 감정을 유발한다. 오정세는 지난 18일 시사회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벌써부터 많이 비웃어주시는데, 앞으로 많은 관객들이 저를 비웃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2006), ‘이층의 악당’(2010), ‘해치지 않아’(2020) 등을 연출하며 ‘코미디 외길’을 걸어온 손재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재미에 집중했다. 손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저는 주제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 적은 없다”며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 거야’가 유일한 판단 기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만든 코미디 영화는 한정된 캐릭터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대사 위주로 구축하는 코미디였다”며 “어느 순간 한계를 느껴 액션을 코미디에 자연스럽게 포함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메시지보다 재미에 집중했다지만, 누구나 공감할 만한 명쾌한 메시지도 있다.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는 트라이앵글을 통해 ‘누구에게나 인생에 세번의 기회는 있다’는 말을 뒤집어보는 것이다. 손 감독은 이 말을 언급하면서 “나이 먹고 보니 일생 동안 세번밖에 기회가 없다면 너무 적은 것 같고, 너무 서운할 거 같다. 그게 이 영화가 건넬 만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