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놀이 [유레카]


‘엠에이치(MH) 세대’라는 말이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니셜을 딴 용어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탄생했다. 젊은 세대를 규정하는 ‘엠지(MZ) 세대’라는 표현이 남발되자 이에 반발한 10~20대 커뮤니티 유저들이 자신을 엠에이치 세대라 부르며 퍼졌다. 이들은 주로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태어났으며, 동시에 그를 조롱하는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과 생전 육성 등을 합성해 조롱하는 행태는 201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 하위문화로 확산됐다. 고인의 밈은 디시인사이드나 일베저장소 등 커뮤니티에서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했다. 박인성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논문 ‘밈과 신조어로 읽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부족주의’(2022년)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다양한 밈의 생산과 소비에는 유머 코드화된 혐오가 포함된다. 이러한 유머에 정색하거나 거부하는 이들을 ‘선비’로 규정하며 커뮤니티 내부의 부적응자로 적대화한다. 일련의 과정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혐오 놀이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최근 노 전 대통령 모욕 논란을 빚은 래퍼 ‘리치 이기’의 공연이 취소됐다. 노무현재단이 서거일(5월23일)에 열리는 공연에 금지 가처분 신청을 예고하면서다. 2006년생인 리치 이기는 노 전 대통령 비하 표현과 아동 대상 성범죄 묘사를 담은 곡들을 발표했다.

리치 이기 사태는 혐오 놀이가 더는 음지 문화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는 지난달 래퍼 팔로알토의 유튜브에 출연해, 논란이 된 가사들에 대해 “지금 20대 남자들이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는 용어”라며 “남자애들끼리 축구하면서 하는 얘기 정도의 수위”라고 했다. 팔로알토는 “나도 생각해보면 예전에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했고, 인터넷에 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동조했다.

팔로알토를 비롯해 더콰이엇, 딥플로우 등 데뷔 20년이 넘은 래퍼들이 리치 이기 공연에 게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혐오 문화가 알고리즘을 타고 퍼지는 동안 ‘꼰대’가 되기 싫은 기성세대가 이를 세대 문화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논란이 커지자 리치 이기와 팔로알토는 사과문을 게시했다.

혐오 표현이 담긴 밈 소비를 한때의 놀이로 치부하기에는 해악이 커 보인다. 청소년들의 인식을 무의식중에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강화, 플랫폼 알고리즘 규제, 또래 간 자정작용 등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고, 무용할 것이라는 반박도 이어진다. 일단 뭐라도 해보자.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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