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109 구조 요청에…대답 없는 국가

나종호의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_09 자살 예방 핫라인의 인력난

일러스트레이션 김예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오늘 그냥 죽고 싶어요. 그냥 죽을래요. (중략) 이제 살고 싶어요. 오늘은 살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미국 래퍼 로직의 노래, ‘1-800-273-8255’ 중에서)

2017년 미국 엠티브이(MTV) 시상식과 2018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래퍼 로직은 ‘1-800-273-8255’라는 노래를 불러 큰 화제를 모았다. 다소 낯선 제목인 이 숫자는 당시 미국의 자살 예방 상담 전화번호였다. 자신의 정신적 고통에서 영감을 받은 이 노래는 “혼자 버티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공연 직후 미국 내 생명의 전화 통화량은 1만건가량 증가했다. 이후 한 연구에서는 이 노래와 공연이 10~19살 청소년 245명의 자살을 막았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극심한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 사람은 평소처럼 사고하고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생사가 걸린 위기 상황에서 119 대신 낯선 일곱~열자리 번호를 떠올려야 한다고 상상해보자. 가족이 심장마비나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듯, 정신건강 위기 상황에서도 접근성은 생명과 직결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2022년 7월부터 전국 어디서나 쉽게 누를 수 있는 세자리 번호 ‘988’을 도입했다. 988로 전화하면 정신건강 위기 대응 전문 상담사와 연결되며, 필요할 경우 지역 정신건강 서비스나 응급 대응팀과 연계된다. 한국 역시 비슷한 취지로 2024년부터 자살 예방 상담 전화를 ‘109’로 통합했다. 번호를 단순화하자 양국 모두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988 도입 이후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자살 예방 상담 이용 건수가 95%가량 증가했다. 한국 역시 2023년 상반기 대비 2025년 상반기 통화량이 55% 정도 늘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미국의 응답률은 90% 이상을 유지한 반면, 한국은 40%대에 머물고 있으며 오히려 감소 추세까지 보인다.

결정적인 차이는 결국 예산이다. 미국은 2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전국 콜센터를 확충하고 상담 인력을 대폭 늘렸다. 단순 전화 응대에 그치지 않고, 현장 출동이 가능한 정신건강 대응 체계와 지역사회 연계 시스템 마련에도 투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988 서비스를 이용한 성인 43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98%가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88.1%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막아주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자살 예방 상담 체계는 특히 청소년과 청년층에게 효과적이다. 전화와 문자 기반의 도움 요청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의학협회지(JAMA)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988 서비스 도입 이후인 2024년 미국 청소년·청년 자살률은 예상치보다 11%가량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한 해 4700명 이상의 청소년·청년 자살을 예방한 것으로 추산했다.

자살, 특히 젊은 세대의 자살은 단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겨진 부모와 가족, 친구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사회 전체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1명의 청년을 살린다는 것은 통계 숫자 하나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관계와 미래까지 함께 지켜내는 일인 것이다.

반면 한국은 번호 통합 이후에도 충분한 예산 확대가 뒤따르지 못했다. 2025년 상반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응답률은 49%에 그쳤고, 저녁과 심야 시간대 응답률은 36.2%까지 떨어졌다. 자살 위험이 가장 큰 시간대에 오히려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2025년 하반기 제2상담센터를 개소하고 상담 인력을 일부 증원했지만 여전히 현장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도 현재 150명 수준의 상담원이 5천만명 국민을 담당하고 있으며, 예산 부족으로 실제 운영 인원은 100명 남짓이라는 사실이 언급됐다. 연간 35만건이 넘는 전화를 감당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상담사들의 번아웃이 걱정되는 수준이다.

같은 회의에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적정 인원을 200명 수준으로 언급했지만, 이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원이다. 일본은 전화 상담뿐 아니라 에스엔에스(SNS) 기반 상담 체계까지 확대하며 자살률 감소 효과를 거둔 바 있다. 한국 역시 지금 필요한 것은 번호 통합 자체를 넘어, 실제로 연결되고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인공지능(AI) 산업이나 저출생 대응에는 수조원 단위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물론 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다. 그러나 수억원, 많아야 수십억원 수준의 추가 예산으로도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영역에는 여전히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24년 기준 자살은 한국의 10~49살 사망 원인 1위다. 또한 청년 자살률은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우리는 한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데는 국가적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이미 존재하는 생명을 지키는 일에는 왜 이렇게 인색한가 물을 수밖에 없다.

이 질문은 특정 정부만을 향한 비판이 아니다. 지난 20년 넘게 한국 사회 전체가 외면해온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에서, 오늘도 예산 부족 때문에 “살고 싶다”는 전화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너무나도 비극적이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최근 국무회의에서 자살 예방 상담 전화 응답 문제를 지적하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비해 지금의 자살률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취임 초기부터 자살 예방 문제를 반복해서 언급하고, 대통령 직속 국민생명안전위원회를 출범시킨 점 역시 고무적이다. 특히 한국 자살 예방 분야의 권위자인 백종우 교수가 부위원장을 맡은 것도 의미 있는 변화다.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살 예방 상담 전화의 현실이 보여주듯, 예산과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변화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지난 10년간 국외에서 체감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고국이 이처럼 자랑스럽고 감사했던 적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을 따라다니는 가장 오래된 꼬리표 중 하나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이다. 벌써 23년째다.

이 기록이 30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 오늘 밤 우리 국민이 “살고 싶다”며 건 전화에, 반드시 누군가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종호 | 미국 정신과 전문의이자 중독 정신과 전문의. 아픔을 고백하면 약점 잡기보다는 함께 공감해주고, 그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저서로는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만일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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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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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2026.05.2008:36
    높은양반들 부정하게 주머니 챙기기 1등인 대한민국 국민들이 정신차립시다
  • jstr#qhaS
    2026.05.2006:44
    예전에 동생이 힘들어서 전화했다는데 안받는다더라구요 유명무실하긴 함
  • KRRCMGJ1(BUSURA)#5OvZ
    2026.05.2007:02
    죽고 싶어 죽는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게. 하시라 나라 전체가 건강한 나라. 누구나 일할자리가 있는 나라 일의 대가가 정당한나라 를 만더는게 리더가 아닐까
    • 몽실#0TQK
      2026.05.2016:49
      비추천수보고 반성좀해라 사고방식 희한한넘아 ㅉㅉ 진짜사고방식 특이한것들 많다 지가2차가해 피해자 방치하도록 동조하는 못된 행동하는건줄도 모르고 일자리.똑똑한게 중요한게 아니라 행복은 사소한 일상에서 오는거다
  • 이정다운#I6qC
    2026.05.2006:36
    자살은 오이시디국가중 1우ㅣ 정부는 죽고싶은사암들을 위해 자살예방센털운영한다 그건참 잘된일인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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