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폭력 피해를 입은 학생을 가해 학생의 ‘맞학폭’ 신고를 이유로 분리·긴급조치 없이 방치한 학교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인권침해를 인정했다. 학교폭력에 있어 쌍방 폭행 주장에 대한 대응 기준이 불분명하고, 교장 재량에 따라 임의적으로 시행이 결정된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인권위는 경기 평택에 있는 한 중학교 교장에 제기된 성폭력 피해자 보호조처 미흡 진정 사건을 지난 1월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재발 방지를 권고했다고 19일 밝혔다. 가해자의 학습권 보장을 이유로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보호 의무를 저버린 행위가 헌법상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진정 내용을 보면, 2024년 3∼4월 이 중학교 1학년 학생 ㄱ양은 ㄴ군으로부터 ‘성관계를 하고 싶다’, ‘신체를 만지겠다’ 등 지속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받았다. 같은 해 5월 ㄴ군은 학교 탈의실과 복도에서 ㄴ양의 의사에 반해 신체를 강제로 만지기까지 했다. 이에 ㄱ양은 ㄴ군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고 가해 학생과 분리조치·긴급조치 등을 요청했지만, 학교 쪽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ㄴ군이 자신도 ‘언어적 성희롱과 폭행을 당했다’는 취지로 소위 ‘맞학폭’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학교 쪽은 ㄴ군에 대한 출석정지와 학급 교체 요청에 대해 “쌍방 피해 신고가 돼 있으므로, 양쪽의 학습권을 모두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택교육지원청도 “긴급조치는 학교장 권한”이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평택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는 결국 ㄴ군의 성폭력을 인정해 강제전학을 결정했고, 수원가정법원도 ㄴ군에 대한 보호처분을 결정했다. ㄱ양에게 제기된 맞학폭 신고는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
현재 학교폭력 처리 지침은 쌍방 폭행을 주장하는 경우 교실 이동 등 분리조처에 있어 ‘양쪽 의사를 모두 반영하라’는 모호한 기준만 두고 있다. 출석정지나 학급교체 등 긴급조처에 있어서는 쌍방 폭행 관련 지침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응은 학교장 재량에 맡겨져 있다. ㄴ양을 대리하는 심창보 변호사는 “학폭위 의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긴급조치는 필수적이고, 성폭력 사건은 특히 그렇다”며 “학교장 재량에 따라 피해자가 방치될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짚었다. ㄴ양은 사건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우울증 등을 앓으며 6차례 이상 병원에 입원했다. 2년 동안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기간이 3주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권위는 “교실 내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어 착석시켰다고 해도, 피해자는 폐쇄된 교실 공간에서 가해자의 존재를 계속 인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지속적인 심리적 압박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런 조치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이고 적절한 분리조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분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학교장이 불가피한 사유 없이 해당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성폭력방지법 등의 성폭력 피해자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결국 헌법에 따른 피해자의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심창보 변호사는 “학교장이 긴급조치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불복하거나 이를 관리해야 할 교육청에 이의제기할 수 있는 절차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