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계)출산율이 올해 또는 내년 1.0명 가까이 상승할 수 있지만, 결혼·출산을 어렵게 하는 주거·일자리·사교육비 부담 등 근본 문제가 완화됐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다시 꺾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 중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015년 1.24명 이후 2023년 0.72명까지 8년 연속 하락하며 세계 최악의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 이후 반등세로 돌아서 2023년 0.75명, 2025년 0.8명으로 2년 연속 상승했다. 올해 1월에는 월간기준 0.99명까지 치솟으며, 저출산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낳고 있다. 하지만 이철희(62)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신중한 모습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국내 인구경제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학문적 성과를 거둔 연구자로 꼽힌다.
학현학술상위원회(위원장 강철규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는 제16회 학현학술상 수상자로 이철희 교수를 선정했다고 19일 발표했다. 이 교수의 수상은 한국이 초 저출생과 급격한 고령화라는 전례 없는 인구 구조의 대전환기를 맞이하며 인구경제학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을 반영한다. 위원회는 “이 교수가 독보적인 학문적 성과와 함께 적극적인 사회적 실천과 소통을 통해 정부정책 수립과 사회적 담론 형성에도 큰 공헌을 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일자리위원회 위원,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기획위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연구 성과를 정책에 직접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 광범위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경제이론과 계량분석을 결합한 ‘계량경제사’의 선구자이자 199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포겔 시카코대 교수가 스승이다.
학현상은 경제학 발전과 경제민주화 실천에 평생을 바친 학현 변형윤 선생(전 서울대 명예교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한국경제발전학회, 한겨레신문이 공동주관으로 최근 5년간 한국경제 연구에서 우수한 연구성과를 낸 경제학자에게 상금 3천만원과 함께 수여한다. 시상식은 2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식당 ‘달개비’에서 열린다.
글·사진 곽정수 선임기자
이철희 교수는 최근 출산율 반등은 매우 기쁜 소식이지만, 사람들이 그 이유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팬데믹 기간에 줄었던 결혼 건수가 2021년부터 반등하면서, (2024년부터) 출산율 증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사회 변화가 아니라면 효과는 오래 가기 힘들다.” 실제 올해 2월 출산율은 0.93명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 교수는 정부 쪽에서 제기하는 ‘정책 효과론’에도 고개를 젓는다. “중상위층인 소득 4분위(상위 60~80%)만 출산 지원에 반응해서 아이를 더 낳는 변화가 나타난다. 중하위층은 현 수준의 지원만으로는 아이를 더 낳기 힘들다. 결혼·출산을 어렵게 만드는 주거·일자리·사교육비 부담 같은 근본 문제가 2023년 이후 완화된 조짐이 없다.” 이 교수는 출산율 변화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출산율이 올라가면 잘되는 것처럼 얘기하고, 반대로 떨어지면 담당자를 경질하는 등 단기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혼·출산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을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이철희 교수는 장기적인 출산율 감소가 기혼자들이 애를 안 낳는 게 아니라 결혼 감소 때문이라는 것을 최초로 규명해 정부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에 실증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산율 감소가 결혼을 안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결혼했더라도 아이를 안 낳아서 그런 건지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었다.” 이 교수는 병적기록부와 지방자치단체 통계 등 다양한 미시 원자료를 발굴하고, 결합해서 직접 데이터를 구축했다. “1990년대 이후 출생아 수 감소의 4분의 3 이상을 결혼의 감소가 설명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결혼을 결정하는 요인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요인은 다르다. 당연히 정책도 같을 수 없다. 정부 정책은 주로 결혼한 사람들이 아이를 더 낳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이를 낳으면 현금을 지원하고, 국공립 어린이집을 더 짓고, 보육료를 무료로 하고, 육아휴직을 지원하는 정책은 모두 결혼한 사람들이 아이를 더 낳도록 유인하는 것들이다. 결혼을 결정하는 요인은 사회의 구조적 요인과 맞닿아 있다.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게 되더라도, 결혼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다행히 2016년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때부터 청년 주거지원 대책이 반영됐다.”
인공지능(AI)를 이용한 생산성 향상은 인구 감소로 인한 인력수급 불균형을 극복할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AI 확산에 따른 악영향을 우려한다. 이 교수는 AI가 노동시장의 ‘미스매치’를 증폭시킬 위험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기술진보의 가장 큰 동인은 비용절감이다. AI가 먼저 대체할 노동시장은 숙련도와 교육수준이 높고, 임금이 비싼 일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인구변화로 인해 인력이 모자랄 가능성이 큰 분야는 돌봄인력 같은 사회복지서비스업, 운송업, 주점업, 소매업 같은 준 전문직과 비전문직, 저임금 직종이다. 모두 AI가 도입될 유인이 낮은 분야이다.”

특히 청년들이 AI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AI의 노출도가 높은 노동시장일수록 청년들이 많이 집중되어 있다.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나갔는데, AI가 그 자리를 대체하면, 청년들이 역량을 쌓을 기회가 없어진다.” 고용없는 성장의 고착화로 청년 고용이 갈수록 악화하는 가운데 ‘숙련 사다리’마저 끊기는 것이다. “AI 같은 기술 진보가 인구 변화로 인한 노동수급 불균형 문제를 자동으로 해소할 것 같지 않다. 시장에만 맡기기보다 정부의 개입이 중요하다.”
이 교수는 2024년 출간한 저서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에서 인구 문제 대응을 마라톤에 비유했다. “인구 변화는 다른 사회·경제적 사안에 비해 느린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대응이 더 어렵다. 정책 효과도 매우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정부나 정치인에게는 인기없는 정책 의제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단기 업적이나 이득을 넘어서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보며 접근하면 좋겠다. 또 정치인 개인의 선의나 의지에만 맡기기보다,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마련하면 좋겠다. 현재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경우 2년마다 위원장이 바뀌고, 여러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도 1년 정도 주기로 복귀하다 보니, 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철희 교수는 “학현 선생님을 기념하는 상을 받게 돼 더 영광스럽다”며 서울대 경제학부 4학년 시절 학현 선생의 ‘한국경제론’ 수업을 인상 깊게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경제학 학부수업은 거의 이론과 방법만 공부하고, 실제로 그게 어떻게 적용 되고 어떤 문제를 푸는지를 다루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변 선생님 수업은 한국경제에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고,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어 매우 새로웠다.” 이 교수는 학현 선생의 가르침을 두가지로 꼽았다. “경제학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를 더 낫게 만들게 하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는 것과 한국경제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학현 선생은 한국경제학계에 경제통계학 등 근대적 경제학 방법론을 도입하고 한국경제론과 경제발전론 분야에서 선구적 연구를 수행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또 상아탑에만 안주하지 않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성장뿐만 아니라 분배와 공정을 중시하며 경제민주화를 위한 이론적, 실천적 길을 걸었다. 선생은 전두환 정부에 의해 서울대 교수에서 해직당하는 고초를 겪었고, 한겨레신문의 창간위원과 사외이사를 맡아 신문 창간에 중심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