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신체가 온몸으로 연주하는 거대한 즉흥곡···윤희 개인전

윤희 작가
윤희 작가

빗방울이 땅에 몸을 던져 형태를 남기듯 물질을 온 몸으로 던져 형태를 만들어 내는 작가가 있다. 물질과 신체, 우연과 필연, 통제와 방임이 맞부딪히며 내는 거대한 즉흥곡이다. 작가는 쇳물과 물감이라는 제한된 물질적 조건 속에 자신을 던짐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장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자유와 생성의 순간'을 붙잡아 두고 있다. 바로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작가 윤희다. 예측 불가능한 ‘찰나의 순간’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오는 6월 30일까지 개최되는 윤희의 개인전 ‘Improvisation’은 물질과 신체, 우연과 필연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빚어내는 뜨거운 생성의 현장이다.

작가의 작업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은 전시의 타이틀이기도 한 ‘즉흥(Improvisation)’을 해석하는 작가의 독창적인 시선이다. 그에게 즉흥은 단순한 충동이나 무질서한 자유, 혹은 단순한 자동기술(Automatism)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감각과 철저한 신체 훈련을 바탕으로, 극도의 긴장 속에서만 도달할 수 있는 고도의 집중 상태에 가깝다.

작가는 물질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중력과 온도, 속도와 밀도 같은 물리적 한계와 조건 안으로 자신의 몸을 과감히 던진다. 쇳물은 공중에서 흩어지고 엉겨 붙으며 예상치 못한 형상을 만들고, 물감은 화면 위를 미끄러지고 번지며 작가의 의도를 벗어난다.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작품은 비로소 살아 있는 에너지를 획득한다.

Creusé
Creusé

작가는 통제와 방임, 의도와 우연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물질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내버려둠’으로써, 작품을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 탄생시킨다.

“때로는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그림이 나를 이끄는지 모르겠다”

그의 고백은 물질과 신체가 완벽히 몰입한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Improvisation
Improvisation

조각은 작가가 주물공장에서 직접 작업한 결과물이다. 익숙지 않은 공장 환경과 일하시는 분들과의 낮섬도 예측할 수 없는 하나의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신작 ‘Improvisation’은 쇳물(알루미늄)이 원뿔구조의 거푸집에 흘러내리다 굳어버린 찰나를 포착하여, 불안정하면서도 강렬한 균형을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 ‘Creusé’ 역시 쇳물을 여러번 던지듯 떨어뜨려 반복적 행위가 만들어낸 ‘응고된 시간의 덩어리’이다.

회화는 작가의 몸짓과 호흡, 리듬이 화면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특히 피레네 산맥의 석양과 남프랑스의 강렬한 빛에 대한 기억이 물질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시장 가득 번져나간다. 무지개빛으로 흔들리는 색채들은 자연과 신체의 기억이자, 물질 자체가 발산하는 빛의 흔적이다.

윤희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조각과 회화, 드로잉은 단절되지 않는다. 조각의 긴장감은 회화의 리듬으로 이어지고, 회화의 호흡은 다시 조각의 구조를 변화시키며 매체 간의 경계를 유연하게 허문다.

Improvisation
Improvisation

이번 전시는 예술의 근원적인 질문인 ‘우연과 필연의 미학’에 대한 깊은 고찰을 던진다. 고전 미학이 질서와 조화(필연)를 중시했고, 잭슨 폴록이나 존 케이지 등 현대 미술가들이 예측 불가능성(우연)에 주목했다면, 윤희 작가는 이 두 힘이 서로의 얼굴을 바꾸며 공존하는 경계를 파고든다.

작가의 말처럼 모든 우연은 오랜 훈련과 재료의 조건이라는 필연적 축적 위에서 비로소 감각되며, 필연의 구조는 우연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열어놓는다. 이는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나 미셸 푸코의 담론처럼, ‘제한된 조건 속에서 인간이 행하는 주체적 선택과 자유’와도 맥을 같이 한다. 주물공장이라는 척박하고 제한된 환경, 중력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한계 속에서 작가는 오히려 자신만의 가장 선명한 자유를 길어 올린다.

Improvisation
Improvisation

이번 전시는 단순히 완성된 결과물을 나열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번만 존재했던 시간과 에너지가 지나간 거대한 궤적이자 지금도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는 감각의 흐름이다. 관객들은 완벽한 통제 대신 실패와 불확실성을 껴안을 때 비로소 예술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

더 많은 기사를 뉴스프리존에서 직접 확인 하세요.

해당언론사로 이동

조회 68 스크랩 0 공유 0
댓글 0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