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금융권이 블록체인을 결제·정산 인프라의 표준 운영체제로 내재화하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하나금융그룹이 두나무에 1조원을 베팅하는 등 디지털자산 생태계 선점 경쟁에 뛰어들었다.
김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미국 금융업권의 블록체인 활용 전략 차별화와 국내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금융권은 각 업권의 비즈니스 모델에 맞춰 블록체인 전략을 차별화하고 있다.
투자은행은 '인프라의 온체인화', 자산운용사는 '자산의 온체인화', 벤처캐피탈은 '금융 생태계의 온체인화'라는 각기 다른 경로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투자은행 중에서는 JP모건이 가장 앞서 있다.
2015년 프라이빗 블록체인 'Quorum' 연구에서 출발해 2019년 JPM코인, 2020년 블록체인 전담 사업부 Onyx를 출범시킨 뒤 2024년 'Kinexys'로 리브랜딩했다.
이 플랫폼의 누적 거래액은 1조5000억달러를 넘어섰다. 2025년에는 퍼블릭 체인인 코인베이스의 'Base'를 기관 전용 예금 토큰 시범 운영 체인으로 선택해 개방형 블록체인 위에서 기관용 결제·정산을 실험했다.
골드만삭스는 'GS DAP(Digital Asset Platform)'를 중심으로 금융자산의 발행부터 정산·수탁·담보 활용까지 생애주기 전반을 디지털화하고 있으며, 2024년 GS DAP의 독립 스핀아웃 추진을 발표해 중립적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움직임도 가파르다.
블랙록의 'BUIDL' 펀드는 2024년 3월 출범 이후 단기 우량자산 투자와 온체인 수익 분배 구조를 앞세워 2025년 중반 약 29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이더리움을 중심으로 여러 퍼블릭 체인에 배포돼 기관용 자산의 유통 범위를 넓히고 있으며, 2025년11월에는 바이낸스의 장외 담보로 채택되기도 했다.
KKR은 2022년 헬스케어 펀드를 토큰화했고, 아폴로는 2025년 토큰화된 사모신용 펀드 'ACRED'를 선보이는 등 사모펀드(PEF) 영역까지 온체인화의 물결이 번지고 있다.
벤처캐피탈의 블록체인 투자 규모는 2021년 411억9000만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뒤 2024~2025년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투자 비중도 초기 레이어1(L1) 인프라 중심(2017~2018년 43.7%)에서 CEX·DeFi·AI·RWA 등으로 고르게 분산(2024~2025년 'Other' 26.1%)되는 추세로, 블록체인 산업이 기술 실험 단계를 넘어 상용화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미국의 규제 정비가 있다.
2025년7월 스테이블코인 연방 규제 체계를 마련한 'GENIUS Act'가 제정됐고, 같은 달 디지털자산 감독 관할을 선물거래위원회(CFTC)·증권거래위원회(SEC)로 이원화하는 'CLARITY Act'가 하원을 통과했다.
미국 통화감독청(OCC)은 서클·피델리티 디지털 에셋·BitGo·Paxos·리플 등 주요 디지털자산 기업의 국립 신탁은행 인가를 조건부 승인하며 관련 사업자를 연방 은행 규제 체계로 편입시켰다.
하나금융 스테이블코인 밸류체인 구상
두나무 지분 인수를 통한 5단계 디지털자산 생태계 역할 분담 (예시)
| 단계 | 역할 | 핵심 기능 | 담당 주체 |
|---|---|---|---|
| 1단계 발행 |
스테이블코인·STO 발행 | 토큰 발행·준비금 관리 | 하나은행 |
| 2단계 커스터디 |
디지털자산 보관·법정화폐 연동 | 기와체인 기반 해외송금 | 하나은행 |
| 3단계 유통·거래 |
온체인 자산 유통 | 디지털자산 거래 지원 | 두나무(업비트) |
| 4단계 금융상품 |
투자상품 구조화 | RWA·토큰증권(STO) | 하나증권 |
| 5단계 결제 |
결제·생활금융 디지털화 | 스테이블코인 결제·정산 | 하나카드 |
자료: 하나금융지주·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
국내 금융사-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결합 현황
2026년5월 기준 추진 현황
자료: 각 사 공시·언론보도
한국에서는 하나금융그룹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5월15일 하나은행은 이사회를 열고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두나무 지분 228만4000주를 1조33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의했다. 두나무 총 지분의 6.55%에 해당하며, 거래가 완료되면 하나은행은 두나무 4대 주주에 올라선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전통 금융 인프라와 디지털 혁신 기술을 결합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디지털 금융 동맹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하나금융이 구상하는 밸류체인은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커스터디는 하나은행, 유통·거래 네트워크는 두나무(업비트), 실물자산 토큰화(RWA) 금융상품은 하나증권, 결제·생활금융은 하나카드가 각각 담당하는 그룹 내 역할 분담 구조다.
두나무가 네이버파이낸셜과 합병을 추진 중인 점도 포석으로 작용한다.
합병 완료 시 하나금융은 네이버파이낸셜 주요 주주(예상 지분율 5% 수준)로 참여해 간편결제·플랫폼 협업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양사는 올해 2월 두나무의 자체 블록체인 '기와체인'을 활용한 SWIFT 대체 해외송금 기술검증(PoC)도 마쳤다.
조아해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서 더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며 "두나무와의 협력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시장 전 밸류체인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전통 금융사와 가상자산 거래소 간 지분 결합 경쟁도 잇따르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계열사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코빗 지분 92% 취득을 추진 중이며, 한국투자증권은 OKX와 손잡고 코인원 지분 인수를 논의 중이다.
MOU 단계에 머물던 협력 관계가 자본 결합으로 격상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제도 정비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스테이블코인 법안에서는 은행 과반 컨소시엄(51%룰) 적용 여부와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 규제 범위가 쟁점으로 남아 있다.
김진영 연구위원은 "블록체인이 미래 금융 인프라의 한 축으로 자리잡는 지금, 적시성 있는 규제 수립과 레거시 시스템의 단계적 고도화, 혁신 기업을 지원하는 생산적 금융의 역할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6년 2월 기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이 약 3000억달러에 육박하는 가운데 99%가량이 달러 연동인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선점하려는 국내 금융권의 경쟁은 이제 출발선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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