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은 끝나도 ‘버려진 아이들’의 자립엔 끝이 없다

지난달 1일 서울시 은평구 백련산 자락의 꿈나무마을에 저녁이 내리고 있다. 대운동장에는 지역사회 아이들을 위한 중학교 신설이 논의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1심 판결까지만 5년 걸린 아동학대 사건이 있다. 재판 내내 주목받지 못했고 선고 결과는 기사 한줄 나지 않았다. 아동학대는 드물지 않지만 ‘소년’이 자라 ‘우리’가 되기까지 한국 사회 난제들이 이토록 집약된 사건도 드물다. 아동의 몸을 노린 ‘불의한 정치’와 양육에 이식된 ‘수용’의 유전자, 학교와 낙인, 소년재판 시스템과 자립 지원의 사각, 가해와 피해를 보는 시선 등이 ‘판결문 밖’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해당 사건과 현재 시설 거주 아동들은 무관함을 밝힙니다.)

“그곳은 제게 집이었습니다.”

지난해 6월11일 안종표(가명·24)가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종이 한장을 꺼냈다. 꿈나무마을(서울시 은평구)에서 겪은 아동학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이 변론을 종결하는 날이었다.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며” 준비해 온 글을 읽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려고 했지만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백진형(가명·24)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차별과 무관심, 폭력에 노출되어 자란 사람들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같이 있어 보면 세상에 분노(☞4회 ‘피해와 가해 사이에서’)가 가득합니다.”

손영조(가명·25)의 최후 발언은 읽는 데만 7분이 걸렸다. “판사님이 중간에 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끝까지 들어주셨”다.

“제가 문제를 삼고 싶은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겨줄 만큼 상해를 입힌 폭력을 묵인하고 방관하며 오히려 더더욱 편견과 멸시의 눈으로 바라본 시설의 모든 어른들입니다.”

5년 걸린 재판이었다. 판사만 3차례 바뀌었다. 피해 입증책임을 진 원고 소송대리인이 증거 확보와 증인 신청·신문을 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해 1월 재판 막바지에 발생한 서부지법 폭동은 두달 넘는 시간을 앗아갔다. 종결된 변론도 재개됐다. 그렇게 겨우 도착한 지난 1월28일 판사(민사3단독 유동균)가 선고했다.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인정하고….”

피고 보육사 6명 중 5명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종표·진형의 중학생 시절 생활반(요한반) 보육사 양기태(가명)의 “범행”은 “정당한 훈육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교대 근무자 ㄱ은 “(양기태의 폭행에) 동조·묵인함으로써 폭행 등 학대 행위를 용이하게 했다”고 봤다. 종표의 8살 시절 보육사 ㅅ과 진형의 9살 당시 담당 ㅇ에 대해서도 “불법행위로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했다. 영조의 마리요셉반 보육사 정규성(가명)의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두곤 “폭행 방법이 감정적·가학적”이라고 짚었다. 시설 운영자인 마리아수녀회에도 “폭력으로부터 아동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며 사용자 책임을 물었다. “종사자 선임·감독 의무 소홀”이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명백하게 그릇된 조치”라고 판단했다. 피고 보육사 5명 모두와 배상 책임을 분담하도록 했다.

배상액(원고별 1300만~1500만원과 이자 별도)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원고들은 “학대 피해를 법원에서 확인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피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소멸’ 주장도 법원은 “이유 없다”(성년이 된 순간부터 시효 진행)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들은 재판 결과를 수용했다. ㄱ과 ㅅ이 항소했지만 취하하거나 각하(인지대·송달료 미납)됐다. 마리아수녀회는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소송 과정은 아픔을 간직하고 사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했던 저희의 과오를 뒤돌아보게 되는 참회의 시간이었다”며 “꿈나무마을 시설 운영의 미흡하고 소홀함으로 발생했던 일들에 대해 원고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정규성은 결과를 “존중한다”면서도 “동생들의 탈선 정도가 학교에서도 문제 되고 이웃들에게도 피해를 줄 만큼 심각했을 때 형과 동생의 약속처럼 서로 합의하에 이뤄진 체벌이었다”는 입장은 바꾸지 않았다.

2만447명 중 2명

“수고했어요. 오늘 하루는 부디 편하게 잠들면 좋겠어요.”

원고들 옆에서 같이 선고를 들은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가 축하하며 말했다. ‘수녀 엄마들’을 상대로 한 재판 일정이 잡힐 때마다 그 ‘엄마들’은 법정에서 세 청년을 응원했다. “원고들이 ‘착한 피해자’가 아니란 이유로 모두가 소송 지원에 난색을 표할 때 유일하게 도와준 사람들이 정치하는엄마들”(소송대리인 박인숙 변호사)이었다. ‘엄마들’은 인지대와 증인 여비, 트라우마 검사 비용 등을 지원했고, 단체의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재판을 방청했다. 장하나 사무국장은 “전북의 한 병원 앞에서 승소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지역 보육원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킨 청소년을 퇴원시키느라 법정에 오지 못했다. 꿈나무마을 재판은 겨우 마침표를 찍었고 그 청소년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진형과 영조는 2만447명 중 2명이었다.

소송엔 끝이 있지만 버려진 아이들의 자립엔 끝이 없었다. 2012년 1월부터 2022년 8월까지 10년간 보호종료 된 ‘자립준비청년’은 4만9894명(김지선·최기정·양영미 ‘사회보장 행정데이터를 활용한 자립준비청년 현황분석과 지원방안’)이었다. 그들 중 2만447명(41%)이 만 18살 이전에 중도 퇴소했다. 자립준비청년 10명 가운데 4명이 자립정착금(현재 1천만~2천만원)과 자립수당(50만원) 지급에서 제외됐다는 뜻이었다. ‘아동양육시설·공동생활가정·위탁가정에서 보호종료된 경우’로 대상을 제한한 아동복지법 탓이었다. 꿈나무마을에서 ‘통고 처분’(☞3회 ‘소년심판’)돼 아동양육시설이 아닌 곳에서 18살이 된 진형과 영조는 ‘자립지원 없는 자립준비청년’이 됐다. 2024년부턴 중도 퇴소자들도 자립지원 대상이 됐으나 ‘그 이전’은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왜 내가 정해준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냐’며 얼굴에 주먹질하고, 발로 차고, 복부도 때리고 그랬어요.”

2024년 8월 종표·진형·영조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주강훈(가명·25)이 말했다. 그는 종표·진형과 요한반에서 생활할 당시 양기태가 지정한 학교 대신 본인이 원하는 학교에 합격했다는 이유로 폭행당했다. 요한반 전엔 영조와 마리요셉반에서 지냈다. 정규성의 아동학대가 드러나 마리요셉반이 해체되자 양기태의 폭행이 계속되고 있던 요한반으로 옮겨졌다. 초등학생 땐 진형과 같은 호세아반이었다. 피고 보육사 ㅇ으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던 “트라우마”도 재판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떠올렸다. 강훈은 재판 원고는 아니었지만 원고들과 함께 학대를 당한 피해자였다.

그의 이름이 ‘고위험군’에 반복해서 등장했다.

지난해 1월부터 꿈나무마을을 운영(2019년 12월31일 마리아수녀회 위탁 종료→기쁨나눔 2024년 12월31일 종료)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은 시설 수탁 직후 자립준비청년 55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012년 꿈나무마을과 ‘부산 소년의집’ 사이 강제전원 중단(☞2회 ‘밖이 알려준 것’) 이후 꿈나무마을에서 보호종료 된 수였다. “그들의 현실을 파악하고 은둔·고립 중인 청년들을 찾아내 개별 지원 체계를 만들기 위한 작업”(조준호 대표)이었다. 보호종료 청년들에게 자립은 죽음과 저울질할 만큼 힘겨운 일이었다. 자살을 생각해본 자립준비청년(50.0%)은 일반 청년(16.3%)보다 3배(2021년 국무총리실 발표 자료) 많았다.

설문조사엔 229명(여 154명+남 75명)이 응답했다. 진로·학업 현황과 경제·주거·정서 상황 등을 물었다. 질문 전반에서 강훈은 부정적 답변을 냈다.

그는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했고, 스트레스 해소법도 찾지 못했다. 고시원에 살며 “자립 상태가 매우 불안”했다. 무엇보다 고민을 나눌 친구로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강훈 외에도 종표·진형·영조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거나 사실확인서를 제출한 요한반 아동이 고위험군엔 두명 더 있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좋든 싫든 집이자 고향인 시설 주변에 모여 살았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자립지원기관이 은평구에 처음으로 설립(2022년 은평자립준비청년청)된 것도 관내에 전국 최대 아동양육시설 꿈나무마을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역에서 청소년도서관(‘작공’)을 운영하며 꿈나무마을 아이들을 돕던 이미경은 그 계기로 구의회(2022년)에 진출해 자립준비청년청 예산 확보 등에 힘썼다. 그에게 “꿈나무 청소년들은 학교 밖 청소년들과도 달랐”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일탈과 범죄에 노출되는 일이 많았지만 꿈나무 아이들은 시설 안팎의 ‘시선’과 ‘관계’에 힘들어하며 위축되거나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 선고 일주일 뒤인 지난 2월4일 원고 안종표(가명·오른쪽)씨와 손영조(가명)씨가 서울시 은평구 종표씨의 집에서 승소 축하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있다. 이문영 기자

늦게 맺힌 꿈

“안녕.”

지난 2월25일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꿈나무마을 초록꿈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먼저 타고 있던 조준호 엔젤스헤이븐 대표가 아이들을 반겼다. 1년 전 법인이 시설 운영을 맡았을 때 “아이들은 엘리베이터도 수녀님한테 허락받고 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는 진형의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간접 지원했다. 진형이 꿈나무마을 동기에게 상해를 입혔을 때 합의금 마련을 돕고 탄원서를 써서 재판에 미칠 영향을 막았다.

조준호는 “부랑아 ‘수용’으로 출발한 시설에서 ‘양육’의 개념을 재정립하려면 ‘개별화’가 중요하다”고 봤다. “그동안 시설의 정체성에 아이들을 맞췄다면 이젠 아이들 한명 한명이 사랑받는다고 느끼도록 시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나무마을 아동학대의 ‘구조적 배경’(☞1회 ‘양육에 이식된 수용’)이었던 ‘국내 최대 규모’(2002년 1050명)는 현재 140여명 규모로 줄었다. 중도 퇴소했더라도 자립지원에서 배제하지 않았다. 서울시와는 ‘꿈나무마을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있었다. 꿈나무마을 아동들이 ‘시설의 아이’가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부지(4만8367㎡)와 건물(2만3972㎡)의 재구조화를 추진 중이다. 대운동장(9594㎡)엔 지역사회 아이들을 위한 중학교 신설이 논의되고 있다.

종표와 영조가 촛불을 껐다.

재판 선고 당일은 종표의 생일이기도 했다. 일주일 뒤(2월4일) 은평구 종표의 집에서 두 친구는 승소와 생일을 축하하며 작은 케이크를 잘랐다. 강원도 홍천에서 스키 강사로 일하느라 참석하지 못한 진형은 “분노가 내 삶에 도움이 되기보다 나를 망친다는 걸 소송을 하면서 깨달았”다.

오랫동안 ‘꿈’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꿈나무에서 꿈을 맺지 못한 아이들은 정작 그 나무에서 떨어진 뒤 스스로 꿈을 찾아가고 있었다. “재판으로 조금의 용기도 얻었”다. 미용을 배우던 진형은 어느 날 탄 스키가 “너무 좋아” 빠져들었다. “계속 무시만 받던” 그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뿌듯”했다. 종표는 바리스타로 일했다. 사이버대학에서 경영마케팅도 공부했다. “마흔살쯤엔 내 카페를 열고 싶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길이 없다”며 절망했던 영조는 최근 사업자 등록을 했다. 입주 청소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일하며 경험을 쌓은 그는 이제 직원들을 고용한 ‘초보 사장님’이 됐다.

손해배상 청구 1년 전 진형은 일기(2020년 10월11일)를 썼다. ‘나의 장점과 단점’이란 제목으로 ‘작지만 대단한 꿈’을 적었다.

“나의 장점은 미소다. 사람들이 나의 미소를 보고 웃으면 좋다. 나는 손재주가 좋다. 뭐든 배우면 잘 따라 해서 미용사 자격증도 금방 땄다. 나는 잘생겼다. 운동을 좋아하고 포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정이 많다. (…) 단점은 참을성이 부족하다. 명상과 기도를 통해 참을성을 기를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행복은 자기가 찾고 만드는 것이니 앞으로 행복을 찾아갈 것이다. 자존감이 부족하다. 일과 사회생활을 통해 자존감을 만들어갈 것이다. 겸손하게 가진 것에 만족하며 나보다 못사는 사람에게 베풀며 살아야겠다.”

소년은 이렇게 자라서 우리가 된다. <끝>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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