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타고 넓게 쓴다…르노 필랑트가 말하는 ‘크로스오버’

르노 필랑트 모습.

중소형 세단 위주로 운전해 온 사람에게 르노 필랑트의 첫인상은 ‘길고 크다’였다. 하지만 실제로 타보니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올라탄다는 느낌은 덜했고, 실내 공간은 큰 차답게 여유로웠다. 주행 감각은 세단 쪽에 가까웠다. 르노코리아가 지난 3월 출고를 시작한 새 글로벌 플래그십 크로스오버 필랑트는 하이브리드 이테크(E-Tech) 파워트레인을 얹고, 에스유브이의 공간감과 세단의 안락함, 인공지능(AI) 기반 첨단 기능을 함께 내세운 차다.

지난 16일 르노 필랑트를 몰고 서울 서초구 일대의 정체 구간과 좁은 골목길을 지나 정부세종청사를 다녀왔다. 총 262.4㎞를 달리며 도심 정체, 고속도로 정속 주행, 터널과 야간 주행, 주차장 진입까지 일상 운전에서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을 두루 겪었다. 시승차는 에스프리 알핀 트림에 증강현실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보스(BOSE)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등이 추가된 모델이었다.

르노 필랑트 옆 모습.

도심과 장거리 주행서 드러난 ‘세단+SUV’ 감각

르노코리아가 필랑트를 설명할 때 강조하는 대목은 ‘세단과 에스유브이의 결합’이다. 외관에서부터 이 점이 드러났다. 세단 옆에서는 큰 차체와 넓은 전면부가 도드라졌고, 중대형 에스유브이 옆에서는 낮게 뻗은 루프 라인과 부드러운 측면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운전석에는 다리를 크게 들어 올리지 않 아도 자연스럽게 앉을 수 있었다. 필랑트는 길이가 4915㎜로 쏘렌토보다 길고, 팰리세이드보다는 짧은 준대형급 크로스오버에 가깝다. 다만 높이는 1635㎜로 쏘렌토나 팰리세이드보다 낮다. 길고 낮은 차체가 큰 차의 공간감과 세단에 가까운 착좌감을 만든 셈이다. 2열과 트렁크 공간도 넉넉해 가족이나 친구와의 장거리 이동까지 염두에 둔 차라는 인상이 강했다. 도심 주행을 함께한 동승자는 “ 세단보다 넓어 답답한 느낌이 없다”며 “덜컹거림이나 소음은 에스유브이에 비해 훨씬 적고 전기차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고 말했다.

장거리 주행에선 세단 쪽에 가까운 안락함과 정숙성이 두드러졌다. 서울-세종 왕복 운전 시간은 5시간을 넘겼지만, 몸에 남은 피로는 크지 않았다. 시트가 몸을 넓게 받쳐줬고 운전석 허리 쿠션을 조절할 수 있는 점도 도움이 됐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안팎으로 달릴 때나 진출입로의 완만한 곡선 구간을 지날 때도 차체가 크게 흔들리거나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은 적었다.

저속 정체 구간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떼는 상황이 반복될 때는 작게 ‘웅’ 하는 엔진 개입음과 스티어링 휠의 약한 진동이 느껴졌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주행 시간이 길어지자 엔진 개입음을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안팎으로 달리다 가속페달을 더 밟으면 속도는 힘 있게 붙었지만, 엔진 소리가 거칠게 튀어나오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연비도 준수했다. 16일 도심 정체 구간과 고속도로를 섞어 262.4㎞를 달린 뒤 계기판 평균연비는 16.4㎞/ℓ로 표시됐다. 필랑트의 공인 복합연비 15.1㎞/ℓ를 웃도는 수치다.

풀 오토 파킹 보조 기능 작동 모습.

첨단 주행 보조는 실용적, AI 비서는 숙제 남겨

필랑트의 또 다른 축은 첨단 주행 보조 기능과 인공지능(AI) 기능이다. 르노코리아는 필랑트에 최대 34개 차세대 최첨단 주행 보조 시스템과 인공지능 기반 음성인식 서비스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골목길에 잘못 들어섰을 때나 차량이 빽빽하게 들어선 공간에 주차할 때는 ‘360도 3D(디) 어라운드뷰’를 켰다. 차체를 투명하게 표시하는 기능으로는 배수구 등 차 아래의 노면 상황도 볼 수 있었다. ‘ 풀 오토 파킹 보조’도 도움이 됐지만 주변에 차량이 빼곡하거나 경사가 진 구역에서는 공간 감지가 안 돼 쓸 수 없었다.

고속도로에서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장거리 운행 피로를 줄였다. 제한속도 110㎞ 구간에서 최고속도를 100㎞로 설정해두자, 앞차와 거리가 가까워질 때 차량이 스스로 90㎞대 초반까지 속도를 낮췄다. 앞차와 간격이 벌어지면 다시 설정 속도에 맞춰 올라갔다.

차량 사용 설명서 팁스 앱 내 인공지능(AI) 내차 도우미 이용 화면. 해당 화면을 켜고 음성으로 질문하면 그림과 영상으로도 관련 설명을 볼 수 있다.

인공지능 기반 차량 안내·제어 기능은 유용했지만, 운전 중 원하는 답을 빠르게 얻는 데는 아쉬움을 남겼다. 필랑트에는 차량 기능을 음성으로 제어하는 ‘에이닷 오토’와 차량 사용설명서·경고등 안내 등을 대화형으로 제공하는 챗지피티 기반의 ‘팁스’가 들어간다. “풀 오토 파킹 보조는 어떻게 시작해?”라고 묻자 음성 인식 서비스 에이닷 오토는 기능 개요를 설명하는 데 그쳤지만, 챗지피티 기반의 팁스는 단계별 실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안내했다. 에이닷 오토는 “하이 르노”라고 부르거나 스티어링 휠 버튼을 누르면 바로 활성화됐지만, 팁스는 에이닷을 불러 연결을 요청하거나 화면에서 직접 앱을 눌러 실행해야 했다.

에이닷 오토는 길 찾기와 창문 여닫기, 공조 끄기처럼 명확한 차량 제어 명령에는 비교적 정확히 반응했다. 정차 중 “춥다”고 하자 에어컨 온도를 1도 올렸고 이어 “그래도 춥다”고 말하자 “에어컨 온도를 더 올려드릴게요”라고 답한 뒤 1도 더 올렸다. 반면, 주행 중 같은 요청에는 차량을 추가로 제어하기보다 일반적인 공조 사용법을 안내했다. 맥락을 파악해 일관되게 차량 제어로 연결하는 능력은 아직 더 다듬을 여지가 있어 보였다.

동승석 디스플레이 기능. 이는 아이코닉 트림부터 기본으로 탑재돼 있다. 올 3분기 출고 예정인 테크노 트림의 경우, 선택 품목이다.

기본형도 주요 첨단 기능 갖춰…편의 사양은 트림별 확인

높은 에스유브이의 승하차 감각은 부담스럽지만, 세단보다 넉넉한 공간과 장거리 안락함을 원하는 운전자라면 필랑트를 검토해볼 만하다. 다만, 일부 편의 기능은 트림과 선택품목에 따라 달라진다. 각종 첨단 기능이 이 차의 설득력 중 하나인 만큼, 실제 구매 때는 원하는 기능이 어느 트림부터 기본으로 들어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360도 3D 어라운드뷰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에이닷 오토와 팁스는 기본 트림인 테크노부터 적용된다. 다만, 테크노 트림은 2026년 3분기부터 출고 예정이다. 풀 오토 파킹 보조와 동승석 디스플레이, 스마트 룸미러, 증강현실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은 트림에 따라 달라진다.

시승차인 에스프리 알핀의 친환경차 세제 혜택 뒤 판매가격은 4971만9천원이고, 증강현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114만원, 보스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은 133만원짜리 선택품목이다. 필랑트 전체 가격은 세제 혜택 뒤 4331만9천~5218만9천원이다.

글·사진 유하영 기자 y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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